금시조
이문열
고개를 천천히 들어볼 때, 고죽이라는 인물이 떠오른다. 눈앞에 펼쳐진 그의 삶은 눈부시면서도 어딘가 우울하다. 몸짓 하나까지도 예술로 불태우는 장인은 흔치 않다. 칼을 휘두르듯 붓을 내려칠 때마다 무언가가 타오르는 느낌이 전해진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에게나 명료히 다가오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어떤 독자는 그의 행적이 너무 격정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혹은 지나치게 폐쇄적인 예술혼이라 판단할 수도 있다. 아무튼 고죽은 간단치 않은 예술가로 다가온다.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예민한 감각이 그를 한없이 외로운 길로 데려가는 듯하다. 그러나 손에서 붓을 놓고 난 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그리고 모두가 그의 정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얘기는 계속 남아 있다. 그 모든 흐름이 작품 전반에 얕은 그늘을 깔아놓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공교롭게도, 작품을 거듭 읽어갈수록 고죽이 진정으로 그리는 세계가 무엇인지 점점 헷갈렸다. 나는 처음엔 단아한 붓놀림의 경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씩 문장을 따라가 보면, 그의 갈망은 회화 기법을 넘어서는 듯했다. 혹은 유토피아적 상상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말과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그의 태도 속에는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강렬함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신념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불가해한 부조리일 수도 있다. 여느 예술가의 삶이 그러하듯, 일상과 그만의 예술이 얽혀서 한 개인을 파멸로 몰고 가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 순간이 고죽에게는 가장 치열하게 다가온다. 줄거리의 마지막 즈음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이를 증명하는 듯싶다.
창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불태운다는 표현은 흔한 편이다. 그러나 그 에너지가 진짜인지, 혹은 자의식의 미화인지는 항상 의문이다. 고죽이 만들어내는 작품 뒤에는 간혹 극단적인 집착이 엿보인다. 그 집착이 예술적 열정으로만 치부될 것인가, 아니면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자신을 갉아먹는 독이 될 것인가. 그런 혼란은 독자에게도 피해갈 길이 없다. 빛을 찾으려면 그림자를 마주해야 한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누구나 빛이 얼마나 찬란한지 잘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빛이 있기 위해서는 어두운 부분이 필요하다는 점이 섬뜩하다. 고죽이 걷는 길은 그런 양면성 위에서 쉼 없이 흔들린다.
고죽이 선택한 삶의 무대에는 늘 긴장감이 돈다. 붓을 잡은 손이 떨리는 모습이 종종 눈앞에 스쳐 간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 날카로워서, 때로 주변인이 부담을 느낀다. 그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온갖 감각을 곤두세운다. 미묘한 단어 선택 하나에 매몰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독자는 그가 예술적인 경지를 추구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무너져내리는 자아를 붙들려고 애쓰는 사람인지 혼란스럽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인 욕망을 품고 있다. 앞에서는 초연해 보이지만, 뒤돌아서면 스스로에게 혹독하게 채찍질한다. 예술가인 고죽도 예외가 아니다. 결국 미치도록 몰입한 그의 의식은 작품 속에 깃든 광기처럼 느껴진다.
비극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고죽이 그리는 작품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헌신적인 열정이 배어 있으니까. 그러나 너무나도 자기 파괴적인 과정이 뒤따른다. 천재성이 빛나는 순간에는 대체로 주변 환경이 파괴되고, 그것은 고독 속에 자신을 가두는 원인이 된다. 그가 칼날 같은 예술혼을 품었다고 해서 다들 존경만 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인은 그에게 거리를 두기도 한다. 그가 뿜어내는 분위기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그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깊이의 에너지는 때로 주위를 상처 입힌다.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다른 존재들은 그의 등 뒤에서 멀어지거나 혹은 별다른 방식으로 흔들린다. 이 고립감이 작품 안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한편으로 고죽 개인의 욕망은 단순한 긍정이나 부정으로 매듭지을 수 없다. 그 안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존경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자아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예술적 갈망이 높은 만큼, 스스로를 옥죄는 위기감도 계속 커진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태도는 극도로 예민하다.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과장된 몸부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살아가는 의미를 걸고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삶에서 떠나버릴 수도 있고, 예술에 몰두하며 타인과 끊어질 수도 있는 갈림길이 펼쳐져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독자들은 그의 행보가 납득하기 어려워도 묘한 연민을 품게 된다.
책장을 덮고 잠시 눈을 감은 후 떠오르는 이미지는 묘하게도 짙은 색감이다. 어떤 이를 향한 엇갈린 감정, 그 에너지가 내면을 파고든다. 확신과 의심이 뒤섞인 도화지 위에 고죽은 미친 듯 붓을 놀린다. 그 붓자국 하나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듯하다. 허나 작중에서 그는 완벽을 바라면서도 결코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완벽은 허상이라는 인식이 그를 더 깊은 구렁으로 몰아가는 듯하다. 그리고 그 인식이, 역설적이게도 더 높은 예술적 경지를 향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읽는 내내 그런 불가항력적인 욕망과 좌절이 뒤섞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필체로 상징되는 고죽의 예술은 사실 소재가 무엇이든 크게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태도, 그리고 자기 자신을 깎아가며 창조하는 투쟁일 것이다. 주변 인물들이 그를 평가하거나, 때로는 동정하거나, 혹은 멀리하려고 시도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죽은 혼자만의 길을 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혹은 그를 이해해주는 이가 나타났다 해도, 궁극적으로 그의 내면을 덮어주기에는 부족했으리라 여겨진다. 아마 그런 외로움이 더하여져서 작품 속의 분위기는 더욱 쓸쓸하게 번진다.
그런데도 고죽의 행보가 통째로 파괴적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예술에 대한 헌신 속에는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픈 바람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몰입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몰입은 심각한 희생을 요구한다. 반면 창조의 환희를 맛보게 한다. 고죽은 그 환희에 자꾸 중독되듯 보인다. 동시에 주변과 균형을 잃어버려 버둥거린다. 평범한 삶과 예술혼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다. 작품 곳곳에서 그런 상반된 모습이 교차한다.
문득 이 텍스트가 김동리 원작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점이 떠오른다. 여러 작가가 뒤이어 쓰거나 변주한 이야기는 저마다의 관점을 반영한다. 여기서는 작가 특유의 필치가 고죽을 빚어내는 과정이 돋보인다. 특히나 육체와 정신의 갈등이 예리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많다. 하얀 도화지 앞에 선 그의 몸이 마치 새장 속에 갇힌 맹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반항하려고 날개를 퍼덕이지만, 결국 날아오르지 못하는 새가 연상된다. 그 안타까움이 독자의 심리에 크나큰 파장을 가져다준다.
기억에 남는 것은 고죽이 붓을 통해 추구하는 이상적 그림이다.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한 붉은색을 찾아 헤매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아니면 눈부신 황금빛을 쫓아 캔버스 위에 자신을 투영하는 듯한 장면도 떠오른다. 그 순간만큼은 무언가 신성한 의식이 펼쳐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의식이 끝나고 나면 고죽은 무너진다. 이런 모순적 과정을 반복하는 그는, 마치 스스로의 욕망을 시험하는 인간 같다. 자꾸만 좌절해도 또 다시 붓을 잡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것이 곧 그의 예술이고, 동시에 자신을 갉아먹는 독이기도 하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사람은 흔히 주변에 상처를 남긴다. 고죽도 예외가 아니라고 느꼈다. 주변인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거나, 혹은 그의 손길에 부담을 느끼는 장면들이 생각난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기에는 너무 깊은 곳에서 불길이 일어난다. 가끔 억지로 웃어보려 하거나, 남들처럼 평온한 하루를 보내보려고 해도 결국 터져 나오고야 마는 본능이 있다. 그 본능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파괴적인 면모를 지닌다. 작중 묘사를 따라가면, 그 끝은 언제나 황폐함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예술가의 길을 그저 불행으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불행과 광기 속에서 인간이 어떤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고죽은 결코 정상적인 기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바라는 경지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도 하고, 어쩌면 그만의 용기를 동경하게 만들기도 한다. 극한의 고독 속에서도 붓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마음은 인간이 가진 도전정신의 또 다른 모습인지도 모른다.
한편, 작품이 전반적으로 비극적이면서도, 거기서 잉태되는 아름다움이 독자의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고죽을 끝까지 이해하기는 어렵더라도, 그가 갈망했던 이상과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계속 생긴다. 작중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견해를 엿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고죽의 행보에 공감을 표하지만, 누군가는 그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그 의견들이 부딪히는 과정이 독자 입장에서도 흥미롭다. 어느 쪽도 딱히 맞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로 남는다.
줄거리에 담긴 구조 역시 의미심장하다. 고죽이 점차 파멸에 가까운 상태로 치닫는 전개는 일종의 서사적 긴장으로 다가온다. 그가 예술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려 할수록, 주변의 담장은 더 높아지는 느낌이다. 결국, 극에 달한 순간에 독자는 그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숨죽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는 그 과정 자체가 커다란 메시지처럼 여겨진다. 그의 불완전한 인간성이 아프게 드러날 때야말로 가장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죽을 마주하는 동안, 예술과 삶의 경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사람에게 예술은 삶 자체다. 동시에 삶의 모든 무게가 예술을 통해 발산된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불안과 의심, 그리고 지독한 환희가 그의 붓끝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때로는 너무 극단적이라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그 극단성 덕분에 더 몰입하게 되는 면이 있다. 독자는 고죽의 모습에서 인간 내면의 다면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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