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한강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을 때 처음 느낀 감각은 무언가 어둡고 날카로운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햇빛이 비치는 깊은 숲속의 공기처럼 고요한 느낌도 있었다. 한강 특유의 문체가 보여주는 세밀함이 마음을 사로잡았고 계속 책장을 넘기게 했다. 그중에서도 묶음으로 언급되는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이 주는 인상은 한층 강렬해 보였다. 읽을 때마다 사소한 부분이 새로이 다가왔다. 그만큼 텍스트가 던져주는 무언의 표현이 풍성하다고 느꼈다.
처음 채식주의자를 펼쳤을 때는 표제작이라는 점 때문에 본능적으로 여주인공 영혜의 삶이 어떠한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해졌다. 채식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어딘가 비정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층위를 찾아보려 노력했다. 가족들의 반응이 과격하게 드러나면서 주변 시선이 하나둘씩 균열을 일으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감정적으로 상처받는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영혜의 변화가 단지 음식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전반적 삶의 태도를 흔들어버리는 사건으로 자리 잡는 것 같았다.
영혜를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는 잔인하게도 무관심과 폭력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남편은 냉소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고, 주변인들도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어떤 경계를 두려 하는 모습이 강했다. 영혜의 선택이 사회적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는지 몰라도, 그녀가 느끼는 내면의 결핍이나 공포는 쉽게 남에게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로 보였다. 그래서 영혜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에 마음이 더욱 찝찝해졌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저 도망치듯이 식물과 같은 존재로 변모하려 애쓰는 과정이 묘하게도 서글펐다.
앞부분에서 영혜의 남편 시점으로 상황이 서술되다가 후반부에는 언니 인혜의 시점으로 넘어가는데, 거기서 주변 인물들의 이기적인 면이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 어떤 인물도 영혜의 처지를 이해하려 온 힘을 쏟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였다. 한강의 문체는 소름끼치리만치 차분하게 묘사하면서도 아주 미세한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기 전후로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날카롭게 대비되었다. 더 이상 일상 안에서 평범하게 어울리기 어려워지는 영혜의 모습이 여러 측면에서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몽고반점 이야기는 또 다른 관점에서 상처를 짚는 작품처럼 느껴졌다. 몸에 새겨진 푸른 반점을 통해 드러나는 욕망과 금기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가족이나 사회의 시선 속에서 그 반점은 무엇으로 해석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의 글에서 몸과 정신이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몽고반점은 서사 속 인물들이 어딘가에 짓눌린 상태로 살아가는 모습을 강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관계가 위태로운 선을 오가는 것 같다. 과거의 트라우마나 무의식 속 욕망 같은 부분이 반점으로 상징되면서, 기존의 삶이 흔들리는 장면이 읽는 이에게도 거칠게 다가온다.
또 한편으로는 반점이라는 것이 누구나 어릴 때 흔적처럼 갖고 있는 부분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는데 어떤 사람은 그 흔적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 속 인물들에게는 그것이 단지 몸에 남은 흔적만은 아니었다. 숨겨놓았던 충동과 억눌린 감정이 일종의 반점처럼 몸 표면에 드러난 느낌이었다. 소설은 그 사실을 직접적으로 소리 높여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불편할 정도로 내면 깊숙이 끌어당기는 기류를 만들어낸다. 독자는 그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평소 외면해왔던 감각들과 마주하게 된다.
나무 불꽃이라는 작품 역시 아주 독특하게 다가왔다. 거기에도 손을 대면 뜨겁게 데일 것 같은 아픔이 있었다. 생명에 대한 은유가 가득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캐릭터들이 어떤 신체적, 심리적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특히 불꽃이란 요소가 활활 타오르는 생동감을 상징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죽음에 가까운 파괴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재로 작용해왔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이어서 읽다 보면, 상처와 소멸, 혹은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느낌이 점점 짙어지곤 한다.
한강의 문장은 무척 절제된 인상을 준다. 화려한 수식은 많지 않지만, 그 간결함 안에 미묘한 감정과 이미지를 촘촘하게 담아낸다. 마치 차가운 유리창을 통해 세상의 비극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독자는 얼핏 차분해 보이는 장면 뒤에 숨겨진 폭발적 갈등을 예상할 수 없다가도 어느 순간 전부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영혜가 거부당하고 고립될 때, 독자 역시 함께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두운 방안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모르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채식주의자 세 편을 관통하는 구심점은 결코 한 사람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영혜가 보여주는 행동 뒤에는 외부의 냉혹함과 가족 내의 폭력이 뒤섞여 있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형상화되고 폭발하는지, 언니 인혜나 제부의 시각을 거쳐서는 또 다르게 변주된다. 특히 몽고반점과 연결되는 흐름을 살펴보면(이 표현에서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몸이라는 매개를 통해 삶의 부조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부조리는 평범한 가정 안에서도 크고 작은 형태로 머물러 있다는 점이 소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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