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주의 - `한국의 보수주의` `한국의 보수를 論한다` 함재봉 교수편을 읽고
2. 함교수가 제시하는 보수주의의 이상과 함께 비판적으로 논하기
한국 보수주의의 뿌리는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밀려드는 서구 열강들을 보면서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윤치호, 유길준 등의 문명개화론자들은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국강병론을 바탕으로 삼아 서구의 사상과 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명개화에 성공한 일본의 모습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이들의 ꡐ개화사상ꡑ은 그 뜻이 실패했을 때, 항일투쟁이 아닌 더 완벽하게 서구 체제로 편입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치호, 이승만, 안창호, 이상재 등의 또 다른 문명개화론자들은 부패한 전통 유교 문화를 버리고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들여 미국의 이념과 사상, 체제를 배우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문명개화론자들의 주장은 국권을 유린하고 동포를 착취하는 제국주의열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입장이었다. 적의 모습을 최대한 빨리 배워서 적과 같은 선상에 서야 한다는 생각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런 이율배반적인상황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였다. 이들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에트 건설을 이상으로 삼았다면, 문명개화론자들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장하는 부르주아집단이었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친일․친미적인 성격을 띠었던 문명개화론자들의 입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힘을 업은 이승만 박사가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면서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삼는 우파적인 민족국가를 설립하였다. 이로서 냉전과 한국전쟁을 계기로 좌익이 철저하게 배제된 상황에서 ꡐ친일파ꡑ는 한민당을 중심으로 ꡐ친미파ꡑ는 이승만 박사의 자유당을 중심으로 뭉치면서 ꡐ여-야ꡑ의 구도를 형성시켰다. 이후로도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목표를 향해서 독재정치 및 군부정치 하에 일본․미국과의 수교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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