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
2.본론
①카롤링거 왕조의 성립
②샤를마뉴
③카롤링거 왕조의 문화
④프랑크 왕국의 몰락
3.결론
게르만족의 민족 대이동으로 성립된 국가 중 가장 오랫동안 나라를 지속시킨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클로비스 이후로 상속에 대한 왕자들의 분할과 내분으로 메로빙거의 왕은 유명무실 해지고 왕에 대한 권력은 궁재 메로빙거왕조의 최고 궁정직 (宮廷職).
에게 돌아가게 된다. 궁재였던 찰스 마르텔은 이슬람의 격퇴를 막아내고 왕의 권력에 가장 근접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찰스 마르텔 이후, 마르텔의 아들인 피핀부터 카롤링거 왕조의 부흥 그리고 프랑크 왕국의 몰락까지 알아보도록 하자.
2.본론
①카롤링거 왕조의 성립
찰스 마르텔의 사망이후 전 프랑크 왕국의 궁재 직이 피핀에게 돌아갔다. 741년 찰스 마르텔이 사망했을 당시 찰스의 두 아들, 피핀과 카를로망이 그의 직위를 계승했지만 6년 후 카를로망이 수도원으로 들어감으로써 프랑크의 모든 궁정의 권력이 피핀에게 돌아가게 됐다.
권력을 잡은 피핀은 왕위에 오를 것을 결심하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당시의 시기가 이러한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게 한 동기가 되었다.
당시 서로마 교회는 큰 과제를 안고 있었는데 그것은 롬바르드족의 침입과 동로마의 관계였다. 726년 비잔틴의 레오3세가 성상숭배 금지령 야훼·그리스도·성모마리아·순교자·성자 등의 이른바 성상(聖像)에 대한 숭배금지를 명한 것.
을 내리자 이러한 관계는 복잡하게 흘러간다. 서로마 교회는 성상 숭배를 서로마 멸망 후 게르만 족의 교화사업에 필요했기에 레오 3세의 금지령에 불복하게 된다. 비잔틴 인은 그 당시까지 이탈리아의 교황 영지를 롬바르드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었고 이러한 자신감에서 성상숭배 금지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E.M 번즈, R.러너, S.미첨 지음, 박상익 옮김 , 소나무, 1994
Sidney Painter, ,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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