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계 이병도의 삶과 행적 3. 두계의 역사 연구 성과와 관점
1-1. 두계 이병도의 생애 3-1. 이병도의 역사 연구
1-2. 조선사편수회와 진단학회 3-2. 두계의 고대사를 바라보는 관점
1-3.『韓國史大觀』과 두계 사상
2. 두계 이병도 사학의 특징 4. 이병도 사학의 한계와 의의
2-1. 실증사학
2-2. 두계 사학의 형성 과정
2-3. 두계 사학의 구체적 성격과 연구
하지만 실제로 두계 이병도는 이 단체의 촉탁(囑託) 역할을 하였으며 핵심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시기에 조선사편수회에 적을 둠으로서 규장각의 고서(古書)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1934년 5월 11일에 진단학회를 결성하였다. 이 진단학회는 국문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실증주의자들이 모인 단체였다. 진단학회가 조선인이 주축이 되어 만든 최초의 학술 단체라는 점과 실증을 우선시함으로서 학문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세련성을 기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진단학회가 학술사적으로 가지는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그는 1945년에서 1962년까지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하였고 동시에 1955~82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지인(知人)의 부탁으로 1960년 문교부 장관을 지냈으며 1962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지내는 등 왕성한 사회적인 활동을 하였다. 1989년 타계하기 전까지 그는 1966년 성균관대학교 교수 겸 대동 문화 연구원장에 취임하는 등 지속적으로 학문 활동을 하였다. 그의 주요 저서에는『韓國史大觀』, 『高麗時代 硏究』등이 있으며, 학술적 업적으로 문화훈장 대한민국장, 학술원 공로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5.16민족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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