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최남선의 근대인식과 조선학 연구』- 최남선은 조선적인 것을 찾으려 했다.
1. 무엇을 주목할 것인가?
2. 저자소개
Ⅲ.『최남선의 근대인식과 조선학 연구』의 내용 비평
1. 최남선은 조선학을 통해 '조선적인 것'으로 독립을 꾀했다.
2. 전통 창출과 '조선 문화론'의 반민족성
3. 왜곡된 근대주의, 오도된 계몽주의
4. '신문화의 선구자'인가 '반민족 친일파인가'
5. 저자의 우유부단한 태도, 주장의 모호성.
Ⅳ. 結語
최남선은 한말부터 해방 후까지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그 사이에 그는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자기모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그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분명한건, 그의 인생이 그만큼 뚜렷이 갈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중인계급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유학으로 서구의 근대문화를 접하기에 유리했다. 특히 그는 근대 문명의 수용 및 전파를 위한 도구로서 저술과 출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최남선의 근대 인식과 조선학에 대한 연구는 서구나 일본을 통해 수용된 조선의 근대 모습은 어땠는지, 또 이러한 근대가 한말, 일제시대, 해방 후라는 각 시기별 민족주의 논리를 형성하는가에 대한 문화적인 측면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가 저술과 출판을 통한 근대 문화를 전파하려 했던 노력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기관인 신문관(新文館)을 창설하고 민중을 계몽, 교도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기 시작하였고, 1908년 근대화의 역군인 소년을 개화, 계몽하여 민족사에 새 국면을 타개하려는 의도로 종합잡지 『소년 少年』을 창간하고, 창간호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실어 한국 근대시사에서 최초로 신체시를 선보였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 류시현, 2005,『최남선의 근대인식과 조선학 연구』, 고려대학교.
- 류시현, 2005,『최남선, 친일로의 자기부정 해방 후 변명으로 이중 부정』, 내일을 여는 역사 제 20호
- 이지원, 2002, 『최남선, '민족'의 이름으로 황민화를 강조한 문화주의자』
- 한국학술진흥재단 - '류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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