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 종묘와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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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철학사] 종묘와 풍수지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음택 풍수와 금계포란형

1. 음택 풍수

2. 금계포란형

Ⅲ. 종묘 내 건물들과 음양론

Ⅳ. 결론



본문내용
종묘와 풍수지리


Ⅰ. 서론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한 종묘(宗廟)는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死後)에 왕으로 추존(追尊)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신명(神明)과 교접(交接)하며 제사를 행하던 사당으로 태묘(太廟), 대묘(大廟)라고도 한다. 종묘의 ‘종(宗)’은 마루, 근본, 으뜸을 뜻하고, ‘묘(廟)’는 위패를 모신 사당을 뜻한다. 『논어(論語)』에 대묘(大廟)에서는 모든 것을 삼가 함이 예(禮)의 중심이라고 하였듯이, 종묘는 의례(儀禮)를 중요시하는 유교 사회의 제례(祭禮)를 위한 으뜸이 되는 공간이다. 조상 받들기를 효성으로 하고 돌아간 분 섬기기를 생존한 분같이 하던 곳이다. 의례는 본래 종교적 제의(祭儀)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것은 인간생활의 풍속·관습·범식(範式)이 되는 의식과 제도를 지배한다.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를 통치기반으로 하여 건국한 조선왕조는 그것을 국가의 주도적인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종묘가 들어설 땅은 유교 경전(經典)에 도성(都城)기반시설 배치원칙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주례(周禮)』[춘관(春官) 종백(宗伯)]에는 임금이 궁궐을 중심하여 남쪽을 향하였을 때 “오른쪽에 사직, 왼쪽에 종묘(右社稷 左宗廟)”를 둔다 하였고, [동관(冬官) 고공기(考工記)]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예로부터 임금이 남쪽을 향해 앉아서 정치하는 것은 모두 정(正)을 근본으로 한 것이다. 사직은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서 중시한 토지의 신(神) ‘국사(國社)’와 곡식의 신 ‘국직(國稷)’에게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풍년을 빌며 제사하는 장소다. 유교사회에서 종묘와 사직, 즉 종사(宗社)는 곧 국가의 기틀을 지칭하였으며, 국가의 흥망(興亡)은 곧 종묘·사직의 존망(存亡)이란 말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의 존재는 정치이념상 국가 기틀의 완성과 왕조의 뿌리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