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현대 중국의 혼란
Ⅲ. 강택민 체제
Ⅳ. 강택민의 부정부패 일소운동
Ⅴ. 향후 중국의 방향
1. 제 1 시나리오 - 온건개혁
2. 제 2 시나리오 - 보수 회귀
3. 제 3 시나리오 - 급진개혁
4. 제 4 시나리도 - 천하대란
Ⅵ. 다양한 등소평 사후 중국 전망
Ⅶ. 결론
현재 중국 지도부는 보수,개혁진영 모두 개방,개혁의 필요성에 이견(異見)이 없으며,다만 개방,개혁의 속도와 그로 인한 부작용을 어떻게 줄이느냐에 이견이 있을 뿐이다.
Ⅱ. 현대 중국의 혼란
등소평이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고집하면서, 필연적으로 마찰을 피 할 수 없었다. 이미 시장 경제가 들어 서면 , 국민들에게는 빈부의 차이가 생기고, 또한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직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고수 하므로 , 국민들은 반발하기 마련이다. 이런 와중에 생겨난 것이 1986년 대학생들의 만주화 시비이다. 그 당시 등소평은 대학생시위를 “부르주아 자유화”라는 이름으로 비난 하면서 , 자신의 오른 팔인 호유방(후야오방) 당총서기를 제가하여 일단 발등의 불을 껐다. 그러나 시위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가 터졌다. 이 사건은 전 서방세계에 생중계 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무력 진압으로 목숨을 잏었다. 이때도 등소평은 자신의 왼팔인 조자양(자오쯔양) 당총서기를 실각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앞으로도 불안요소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경제 발전으로 말미암아 도시 농촌간의 격차가 커짐으로써 , 농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 한 얘로 다음의 경우를 보자.
북경의 한 저명한 교수가 한 말이다.
“ 10년전 금의환향 했을땐 가족은 동네 잔치 까지 베풀었습니다. 큰 학자가 태어났으니 우리 모두의 자랑이라고 했었지요” 그러나 지난해 다시 귀향하자 상황은 180°로 달라져 있었단다. 잔치는 커녕 가족의 한숨섞인 넋두리만 귀를 때렸다. “죽자고 공부해 명성을 얻으면 뭘 하노 ...... 남들처럼 호의호식 한번 못하고 ......” 이 교수의 한달 월급은 1천원(약 10만원) . 1년 내내 원고를 써 책을 낸다면 고료로 2천원 정도 더 번다.
그런데 폭발아들의 초호화판 생활은 현대판 귀족 바로 그것이다. 한번 입장해 목욕하고 팔등신 미녀에게 마사지 받는데 1원쯤 드는 사우나에는 폭발아 단골들로 만원사례다. 거리마다 즐비한 가라오케에서 3~4명이 웬만히 즐기기 위해 2천~3천원 정도는 쉽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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