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일제강점기의 식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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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화사] 일제강점기의 식생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일제 강점기의 식생활 (1910~1945년)

(1) 서론

(2) 본론

1) 일상식생활
2) 식품산업
3) 기호식품의 변천
4) 외식산업의 발달


(3) 결론
본문내용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의한 농민수탈로 일인당 쌀 소비량은 감소하게 되었는데
표 1에서와 같이 쌀 소비량은 일인당 연간 소비량이 1915~1918년의 0.70석에서 1930년대로 오면 0.44석으로 감소하여 1915~1918년의 62.6%에 불과하게 된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조의 소비량을 늘리기는 했으나 다른 곡류의 소비량도 감소하여 결국 총 곡류의 소비량은 감소하게 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춘궁농가를 증가시켜서 1930년에는 전체농가의 48.4%가 춘궁농가로 나타났다.

또한 부식섭취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면 일년 동안 생선이나 계란, 육류 등 동물성 단백질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사람이 전체의 약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서 이 시기의 식생활이 매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궁농민, 화전민, 토막민의 식생활이 극에 달한 참담한 상황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제 식민지 시기에도 소수의 상류생활자와 중류 생활자는 대체로 충분한 영양소 섭취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2,365~2,441 kcal 정도의 열량을 섭취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 산미증식계획

토지조사사업을 통하여 조선의 많은 농민들은 토지를 잃은 채, 새로이 지주가 된 일본인들의 소작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의 농토를 빼앗은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보다 많은 미곡을 수탈하기 위하여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을 세웠다.

이 계획은 3·1운동 직후인 1920년에 조선 개발의 주요 과제로 등장하여 그 후 15년간 계속되었다. 산미증식계획 이후 1930년대 일본에서 가져간 쌀은 1910년대의 8배 이상이었다. 즉, 1912~1916년 사이의 대일 수출량은 1,056,000석 이었고 1932~1936년에는 8,577,000석 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무리한 대일 수출은 조선 내의 쌀의 소비를 격감시켰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식량난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김기숙 [ 음식과 식생활 문화 ] 서울:대한교과서, 1997
김숙희 [ 식생활의 문화적 이해 ] 서울: 신광 1998
한복진 [ 우리생활 100년: 음식 ] 방일영문화재단, 2001
박춘란 [ 식생활문화 ] 서울:효일,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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