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2. 감상평
나는 그의 글을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흘러가는 강물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는 바위처럼, 그의 생각은 주체성이 있었고, 그것은 그의 글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의 글은 한결같이, 따뜻한 마음을 내게 전해 주는 것들이었고, 점점 기계화되어 가고 있는 이 삭막한 사회에서 잊혀져간 우리 고유의 정신들을 일깨워 주는 것들이었다.
그가 대전의 감옥에 있었을 때 쓴 글 중 '두 개의 종소리'라는 글을 보면, 외래 문물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교회의 종소리와 우리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 범종의 소리를 비교하고 있다. 그는 교회 종은 높고 연속적인 금속성이고 새벽의 정적을 깨는 틈입자라고 했고, 범종은 나직막한 음성 같으며, 적막을 심화시킨다고 했다. 이 두 종소리는 바로, 외래 문물과 우리의 문물이 공존하고 있는 나의 의식 속에 들려오는 두 개의 종소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감옥에 있어서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사물을 깊은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그 물건에 담겨 있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이 엿보이는 몇몇 글 중에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펜과 붓에 관한 글이었다. 그는 펜은 실용과 편의라는 서양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했고, 붓은 동양의 정신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나도 이제껏 펜과 붓을 써 왔지만, 실용적이고 편리한 펜이 서양의 실용주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도, 붓 끝의 감촉이, 부드러운 묵향이, 묵을 가는 정적이 동양의 정신을 담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그런 풍부한 사고력과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생각들이 부럽다.
또, 그의 글들 중에는 감옥 생활에 대한 글이 몇 있었는데, 짧은 글이면서도 징역사는 사람들의 한을 나타내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나의 가슴을 저미게 하고도 남았다. 1988년 1월, 한 겨울에 쓴 것으로「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 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 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라는 글귀가 있다. 눈사람처럼 다리가 없어서 못 걷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다리가 있는데도 걷지 못하는, 좁은 울타리에 구속받는 수인들의 애환을 잘 알 수 있었다. 어딘가에 갇혀서 20년 동안이나 산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런 일일까? 아마도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매일 똑같은 일과와, 매일 보는 그 딱딱한 세 개의 벽, 그리고 유일한 빛이 보이는 희망의 문과도 같은 나지막하고도 작은 문이 아닐까?
ꡐ벽 속의 이성과 감정ꡑ 이라는 글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 보고 싶었다. 교도소의 벽, 그것은 시야와 수족과, 그리고 사고를 한정하여 작아지고 좁아지고 짧아지게 하여 단편적이고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인 편향을 띠게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크기가 같아야 하는 이성과 감정의 두 수레바퀴 중 감정이라는 외바퀴로만 굴러가는 불안한 분거와 같다고 표현하였다. 그렇다, 이것은 나에게도 포함된 말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설정한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위하여 나를 가두고 속박해왔던 것 같다. 그 점 속에 나를 가두고 끊임없이 나를 작게 만들어왔다. 그러면서 나는 그 외의 모든 것에 무관심하기 위해 노력했고, 더 큰 것을 보지 못한 채 너무나 단편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그 점으로부터 내가 조금만 벗어나기만 해도 극도로 불안해했다. 감정을 극복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역시 감정이라는 사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일은 감정의 억압보다는 이성의 계발이며, 이것은 감정에 기초하고 감정에 의존하여 발전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큰 의미가 담겨있는 말이었다. 벽의 속박과 한정과 단절로부터 감정을 해방한다는 말, 이해가 될 듯 안 될 듯 한 말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정신적인 자유를 얻는 길일 거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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