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프리챌의 흥망과정
3.프리챌 살리기
2002년 당시 포털 사이트 업체 최초로 ‘회원 수 1000 만 명 돌파’
But, IT벤처의 거품이 꺼지면서 경영악화
-> 프리챌은 포털 업계 사이트 최초로 유료화라는 실험을 통해 경영개선을 모색
But, 잘못된 마케팅 방법과 고객의 니즈 파악 실패 그리고 전제완 사장 자신의 부패로 인해 커뮤니티 점유율 하락 조짐
-> 경영개선을 위한 노력. 하지만 이미 고객은 타 사이트(다음, 네이버)로 옮겨가 시장 점유율은 더욱 하락.
‘UCC라는 새로운 이슈의 활용’ , ‘인터넷을 통한 전문적 정보검색’ 서비스 제공으로 프리챌을 다시금 커뮤니티의 강자로 복귀할 수 있는 방안 모색
2000~2002년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굴지의 인터넷 기업에서 2002년 이후 몰락과정을 그렸습니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해 주는 사례입니다.
1. 방문자 대비 페이지 뷰 1위를 기록 (2002년 9월 당시 )
- 고객 충성도 높은 서비스로 유료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이트로 평가
2. 유료화 직전 프리챌은 1000만 명의 회원과 112만 개의 커뮤니티를 보유
"2년 반 동안 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총 800억 원이 들어갔다.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투자만 할 수는 없다"
"유료화는 생존 위한 마지막 선택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다수를 믿는다."
2002년 당시는 IT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자본조달과 수익창출이 어려웠다.
프리챌은 유료화가 살아 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하여
유료화를 통한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주장하였다.
이는 포털 업계의 최초의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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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개선을 위한 노력
7개월 만의 재 무료화 선언
2003년 5월 지식 검색 서비스 오픈
2003년 5월 메신저 프렌즈 오픈
2003년 12월 3D 아바타 서비스 오픈
2004년 훌라게임 서비스 베타 오픈
2006년 5월 동영상 큐 서비스 오픈
개선의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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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의 위키 백과 벤치마킹
폐지되었던 지식서비스의 노하우를 활용
전문적 지식,사전서비스 재개..
초기에 전문적인 자료를 활용할수 있는전문가를 섭외를 통한 서비스구축
수요자를 중심으로한 검색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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