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국의 경제상황
3.실업
4.전태일 평전을 읽고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피복 봉제 노동자였던 의붓아버지와 그의 사업을 돕던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 여동생 두 명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사업은 항상 잘못되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야채행상, 식모 등을 하시며 생계를 꾸렸으나 항상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전태일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아버지를 도와 재봉일을 하거나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을 해야만 했다. 전태일의 아버지는 사업이 잘 되지 않으면 폭음과 폭행을 일삼았는데 17세 이던 1965년 아버지의 횡포에 지친 전태일은 집을 나와 서울로 올라와서 평화시장 내에 있는 ‘삼일사’ 라는 곳의 견습공(시다)로 처음 취직을 하게 된다. 미싱일에 경험이 있었던 그는 남달리 기술을 빨리 익혀 곧 미싱보조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빨리 승진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 보다는 평화시장의 비참한 노동 현실에 항상 마음 아파하면서, 재단사가 되어 시다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는 미싱사의 월급을 포기하고 다른 회사의 재단보조로 재 취직하였다. 19세가 되던 1967년 그는 결국 재단사가 되었지만 마음껏 여공들을 돕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혔고, 자신 또한 매우 혹사당하며 결국 직장 내의 여공들에게 너무 인정이 많았던 전태일은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주인에게 해고당한다. 기술이 좋았던 전태일은 곧 다른 직장을 얻어 취직했고, 그 당시 아버지를 통해 ‘근로기준법’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진 전태일은 동료 재단사들의 모임을 추진하여 ‘바보회’의 회장이 된다. 바보회 활동을 하던 중 평화시장에 소문이 퍼지고, 전태일은 위험분자로 낙인이 찍혀 직장에서 해고된 후 다시 동일업종으로 취직하지 못하게 되었다. 1년 동안 공사판을 전전하고 일용직 잡부로 일하다가 1970년 9월 다시 평화시장에 취직하고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냉담한 현실에 좌절하여 결국 11월 13일 오후 2시경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라는 외침과 함께 분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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