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사] 송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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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언론사] 송건호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약력
Ⅱ. 김대중내란음모사건
Ⅲ. 자유언론수호운동
Ⅳ. 『말』지 보도지침 사건
Ⅴ. 한겨례 신문 창간
Ⅵ. 청암 언론재단
마치면서
본문내용
Ⅱ. 김대중내란음모사건

1977년 천관우의 제의로 재야 세력과 관련을 맺기 시작한 송건호는 80년 5․17직전 ‘지식인 134인 시국 선언’에 가담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차례 김대중과 인사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꾸며져 고초를 겪었다. 허위자백을 강요하며 모진 고문을 가하는 기관원 앞에서 결국 그는 허위자백을 하고 말았다. 훗날 송건호는 '그때 참 많이 맞았다'는 짤막한 한마디 말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결국 목숨까지 잃었으니, 당시 그가 받은 고문이 얼마나 지독한 것이었는지 그 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정말, 그것은 완전히 날조된 것이었어요. 김대중씨로부터 70만원을 받은 것으로 했다가 90만원 100만원으로 올리더니 나중에는 딱 100만원이면 이상하다고 해서 120만원 받은 걸로 진술서에 쓰라고 하더군요. 이를 거부하자 '야 이 새끼 정신 못차렸구먼'하면서 공갈과 고문을 자행했어요.”
외려 '내가 만약 끌려가서 평소의 나답지 않은 이상한 소리를 한다든가 하면 고문에 의한 것이니 그리 알라'는 글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Ⅲ. 자유언론수호운동

한국 언론사의 최대 격동기랄 수 있는 74년, 송건호는 편집국장에 취임했다. 이 시기는 언론탄압이 극에 달한 시기로 3선개헌으로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을 반대하거나 부정하는 모든 행위는 보도할 수 없도록 했다. 소위 긴급조치 1, 2호가 이때 발동됐다. 언론사에는 기관원들이 상주하고 거의 모든 기사에 관여했으며 걸핏하면 기자들이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기가 일쑤였다. 어느 신문도 대학생들의 유신반대 철폐 시위 등을 보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