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서 과학시대의 신앙을 읽고
종교다원주의와 선교, 기독교 변증. 독서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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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와 선교 + 기독교 변증과 관련 독서보고서 작성
나는 한때, 종교생활을 하였으나 종교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배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감을 느끼며 과학적 회의론자가 되었으나 현재는 과학과 종교의 갈등적 관계보다는 이상적 관계를 생각해보게 됐다. 그런 내게 흥미로움을 준 책이 있는데, ‘과학 시대의 신앙’이다. 기술이 발달하며, 사회가 전문적으로 변화할수록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대중은 부정적 의견이 지배적인데, 이에 대해 과학과 신학 두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저자가 심플한 논지로 신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 저술했다. 이 책은 12가지 주제에 대해 갈등, 분리, 대화의 입장에서 ‘21세기 현대 과학 시대에도 여전히 신앙은 필요하다’라는 점을 내세우기 위해 저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과학이 발달할수록 설명할 수 없는 이상적 일들을 기록하고 신뢰하는 신앙에 관해 더욱 그러했다.
이 책은 ‘신앙은 과학과 대립하는가’, ‘과학은 인격적 신을 배제하는가’, ‘신앙은 진화와 양립할 수 있는가’, ‘기적은 실제로 일어나는가’, ‘우주는 창조되었는가’, ‘화학만으로 생명을 설명할 수 있는가’, ‘과학은 지능을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신 없이 선해질 수 있는가’, ‘우리는 특별한 존재인가’, ‘사후 세계는 존재하는가’, ‘우주는 목적을 갖고 있는가’, ‘외계인은 존재할까’ 라는 기존의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언급되지 못했던 사후 세계, 외계인의 존재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성서문자주의에 근간을 두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현대 과학의 업적을 부정하였고 과학적 회의론자들은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기에 종교적 가치를 고려치 않는데 대표적 인물이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호킹이다.
존 호트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갈등, 분리,대화’로 분류하여 접근한다. 먼저 갈등(Confilct)은 과학과 신앙은 역사적 조사와 철학적 성찰에 의해서도 반대된다. ‘과학적 회의론scientific skepticism’으로 신앙이 환상에 근거한 반면 과학은 관찰 가능하고 실험 가능한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학과 신앙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전쟁이 존재한다고 결론 지었다. 두 번째, 분리(Contrast)는 과학과 신앙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 철저히 다른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둘 사이에는 어떤 갈등도 존재할 수 없다고 하며, 과학과 신앙에 대해 중립으로 본다. 마지막 대화(Convergence)는 과학과 신앙은 서로 다른 종류의 질문을 제기하면서도 서로 간의 교류와 대화를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은 성숙한 신앙과 신학은 우주에 대해 전통적 과학이 도달할 수 없는 단계까지 고려할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신에 대한 적절한 이해로 과학의 발견에 깊이와 의미를 더할 수 있듯이 과학도 신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과학시대의 신앙. 36~37p.
과학법칙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묘사이면서도 주어진 현상에 관련된 본질적 프로세스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즉, 인류에게 특정 시스템 구성 부분들의 인과관계 부분에서 내부 논리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의 헛발질. 289p.
2장은 1장에서 언급한 ‘갈등’, ‘분리’, ‘대화’ 세 입장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는데, 먼저 ‘갈등’은 이 세상에는 오직 자연만이 실재하고 있으며, 과학은 이를 이해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도구라고 정리한다. 과학이 세상에 도래하기 전 사람들은 풍년이나 다산과 같은 풍요롭고 좋은 것들은 신이 주신 선물로, 홍수, 지진, 쓰나미, 가뭄, 전염병, 기근 같이 인류에게 해가 되는 것들은 신의 형벌로 생각했다. 하지만 과학은 맹목적인 화학과 물리 법칙에 의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며, 종교인들이 가지는 의식 및 감정까지도 자연적이고 과학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무신론자들에게 신앙이란 ‘증거가 없는 믿음’으로 신앙을 특별히 종교적 용어로 간주하다. 이는 또 다른심각한 오류로 과학과 무신론은 신앙과 관련이 없는것처럼 보지만 역설적이게도 무신론은 신앙의 입장이다. 우주의 합리적 이해 가능성 즉 신앙에 대해 믿음이 없다면 과학 역시 동일하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들의 헛발질. 56p.
‘분리’의 입장에서는 과학에서는 신의 개념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 언급하며, 과학주의와 과학적 자연주의에 대해 보다 정교하게 정리하고 있다. 과학주의는 과학만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믿을 만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과학적 자연주의는 과학적 이해가 가능한 자연 세계만이 실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신념으로 과학과 신앙과의 충돌은 없으며, 과학적인 방법으로는 신에 대해 알아낼 수 없기에 어떠한 가정도 제외해야한다고 한다. 하지만 변화적 증거 차원에서는 무수히 일어난 신을 만나 변화한 사건들이 있기에 증거가 없다는 것은 문제라고도 한다. ‘대화’입장에서 하나님은 신앙의 마법사가 아닌 창조주이다. 창조주는 불변의 질서로 고정하지않고 자유, 모험, 드라마 등 변덕스럽지만 자유스러운 역사가 가능한 이유이다. 이런 것들은 빅뱅우주론으로 과학에서는 하나님의 인격을 더욱 잘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본다.
이 책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갈등’에 대한 고찰로 3장 ‘신앙은 진화와 양립할 수 있는가?’ 인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의 진화 이론은 선하고 자비로운 창조주(인격의 신)와 대부분의 개체들이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며 자연 선택에 의해 도태됨의 양립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3가지 입장으로 ‘갈등’에 힘을 싣는데, 첫 번째 입장이 우연이다. 6,500만년 전 유카탄 반도에 충돌한 소행성으로 인해 선사 시대의 동물들과 공룡들이 멸종되버린 사건을 예로 들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영장류와 인류의 출현의 기회 또한 생겨났기에 우연하게 연속된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지 창조주에 의한 창조물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입장은 무자비함이다. 자연 선택은 환경에 적응하게 된 개체가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으로 먹이 사슬을 예로 든다. 이 또한 창조주, 신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빅뱅 이후 100억 년이 지나고 나서야 인류가 등장하는 것은 신의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의 설계에 의한 것이라면 조금 더 전지전능한 객체가 만들어져야하는데 그렇지 않고 기생하는 객체, 병 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윈은 불가지론자에 가까우며, 무신론자가 아니다. ‘분리’입장은 다윈의 생명 이론에 관해 과학과 신앙은 세계를 바라보는 또다른 방식들이기 때문에 유의미한 경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다윈의 개념에 대해 문제삼지 않고, 과학주의·과학적 자연주의와 진화 이론의 잘못 융합된 진화적 자연주의에 대해 예의주시한다. 재미있는건 여전히 ‘다윈 전쟁’에서 창조론자들과 진화적 자연주의자들은 성서에 대해 반대되는 입장을 고수하는데, 양쪽 모두 성서를 과학적 지식으로 설명하고 있어 이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분리’입장은 성서는 과학 시대 이전에 기록되었기에 현대 과학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며, 성서의 목적이 과학적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하고 거룩한 신비로움으로 신자들을 깨우친다고 믿는다. 과학시대의 신앙. 71p.
끊임없이 혼란을 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분리’입장은 다윈의 생명 이론과 신앙 사이에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린다. 첫째, 우연에 대한 정의가 매우 어렵다. 신에게는 자연의 섭리, 객체의 생존 등 오직 신만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데,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에 이를 우린 ‘우연’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일식과 월식 또한 우리의 역사에서는 재앙으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관측가능한 과학인 것처럼 그것에 대한 이해와 관찰의 깊이가 낮은 지금의 인간들에게만 ‘우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고통의 문제는 과연 악의 문제일까?에 대해 그 예로 우리는 중력이라는 과학적 법칙과 사람간의 사고를 신의 재판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진화 과정 속 많은 시간이 낭비되었다고해도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일뿐, 신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에 시간에 대한 낭비라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우리의 눈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하지만 ‘대화’의 입장에서는 과학을 포용하며, 신앙적으로 긍정적인 부분들을 보는데, ‘우연성’은 신이 세상을 사랑해 창조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창조 세계에서 놀람의 연속, 기적을 경험토록 한다는 것이다. 진화 과정 속 고통과 아픔은 끝나지 않은 차원이기에 아직 논의하긴 어렵다고 본다. 고요하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만이 알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긴 시간동안 창조한 것을 왜 문제로 보는가이다. 긴 시간의 준비를 통해 인류가 창조된 것은 모든 사건들이 펼쳐질 충분한 시간을 통해 생긴 은혜로움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연성, 고통, 시간의 낭비는 모두 인간의 자유의지 해석에 의한 것일뿐 신앙·신학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다윈의 진화 이론에 의한 것은 오히려 신의 창조적 역사 중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이는 것이지 과학적 이의제기될 부분이 아니라고 본다는 점이 재미있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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