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차의 기원
2. 중요 인물 중심의 약사(略史)
二. 차의 종류
三. 다회의 양식
1. 건물 양식
2. 가구와 다구
3. 양식과 순서
4. 다회 양식의 근본 정신
五. 일본차의 현재모습
1. 차 문화 보호
2. 차 생산 동향
3. 차 소비량
4. 우리와 비교
유학승[ 견당사(遣唐史) ]이
가져왔으며 주로 약용으로 사용함.
사이쵸(最澄, 최징)이 당나라에서
차씨를 가져와 심었고 단차(團茶) 형태로 마심.
주로 수입해서 마셨기 때문에 귀족과 승려들만이 접함.
894년 견당사 폐지에 따라 차 마시는 일이 중단 되기도 함.
송나라초 국교가 재개되면서 말차와 비슷한 것이 형성 됨.
1. 일본 차의 역사
2) 중요 인물 중심의 약사(略史) - 센리큐(千利休, 천리휴, 1522~1592)
- 모모야마시대 사카이의 상인 집안 출신.
- 와비차의 경지를 구현, 집대성. 일본의 다성(茶聖).
- 차선일미(茶禪一味) 형식보다 차를 배우고 행하는 이의 마음을 더 중요시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소박한 차 도구와의 조화
-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갈등으로 센리큐는 할복자살
→ 이후 자손들이 세 유파를 형성 오모테센케(表千家, 표천가)
우라센케(裏千家, 리천가) 무샤노코지센케(武子小路千家, 무자소로천가)
* 리큐와 이도다완(井戶茶碗, 정호다완) 리큐 이전은 대체 당물 중심의 다회였고
송나라의 천목다완(天目茶碗)이 다인의 비장품이었다. 그러나 주코 이후 ‘와비차가’
지향되었고 센리큐는 조선 찻사발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낸다. 이후 ‘이도다완’,
즉 조선의 분청사기는 다기의 극상품으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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