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경제성장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발전했지만, 그 과정에서 양극화와 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해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한국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장단기적으로 빈곤의 위협을 느끼곤 한다. 다음 추천도서를 읽고 우리 시대 불평등 또는 (함께) 빈곤에 대해서 묘사하고, 그 대안에 관한 자기 생각을 서술하시오.
사회문제론
고도 경제성장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발전했지만, 그 과정에서 양극화와 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해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한국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장단기적으로 빈곤의 위협을 느끼곤 한다. 다음 추천도서를 읽고 우리 시대 불평등 또는 (함께) 빈곤에 대해서 묘사하고, 그 대안에 관한 자기 생각을 서술하시오.
목차
I. 서론
II. 본론
조문영 교수의
2. 우리 사회의 빈곤
3. 우리 사회 빈곤의 해결책
III. 결론
IV. 출처
I. 서론
빈곤은 우리 주위에 늘 존재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빈곤과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빈곤은 무엇이며, 빈자는 누구인가. 현대 사회는 인구 다수가 불평등 구조의 피해자를 자처하는 이른바 ‘경계 없는 불평등’의 시대이다. 의 저자인 인류학자 조문영 교수는 금융자본주의가 활발하게 그 위세를 떨치고 코로나라는 전례없는 팬데믹이 기승하는 상황 속에서 부의 양극화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행 중인 작금의 시대에 빈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빈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빈곤을 새롭게 발견하고 쟁점화하는 작업에 노력을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우리 시대에서 빈곤과 관련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노동’과 ‘분배’, 또는 ‘청년’, ‘기후위기’, ‘이주와 철거’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다뤄보고 동시에 빈곤이라는 키워드를 의제화하려고 시도한다. 본 보고서에서는 이 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빈곤이 현재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그러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II. 본론
조문영 교수의
의 저자는 빈곤과 관련된 문제는 늘 사람들 사이에서 제기되지만, 그 해결책이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회가 발달하고 경제가 가속화되면서 사람들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이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빈곤’이란 무엇일까.
조문영 교수는 빈곤을 과정으로 본다. 빈곤은 과정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빈곤이며 어떤 사람이 빈자인가’라는 질문은 늘 대답이 없는 질문으로 남게 된다. 빈곤은 ‘어디에도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하는 빈곤은 늘 돈이 없으며, 살 집이 없고, 먹을 것이 없으며, 자신을 돌봐줄 보호자도 없는 상태이다. 이는 물질적인 결핍과 경제적인 고립 등으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이처럼 빈곤의 정의에 대한 단순한 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문영 교수는 을 통해 빈곤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간단히 답하기를 거부하고 내려진 답을 거듭 번복하는 과정을 거친다.
빈곤의 정의에는 정답이 없고, 빈자에는 경계가 없다. 에는 다양한 형태의 빈자가 등장하는데, 이주자, 여성, 노예, 불안한 청년, 토착민, 도시 빈민, 기초수급자, 공장노동자 등 다양한 빈자가 책에서 소환된다. 조문영 교수는 빈자의 외연에 대해 당시의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통치되는지, 그리고 그 사회에 연루된 사람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조문영 교수는 20여 년간 한국과 중국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무허가 판자촌, 슬럼화된 노동자 거주지, 공장지대 등 빈곤이 전형적으로 도드라진 곳에서 사람들을 관찰해왔다. 이를 통해 가난한 이의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고 그의 인생에 발걸음의 보폭을 맞추다 보면 빈곤이 겉으로는 물질적 궁박함으로 표상되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실존의 결핍을 메우기 위한 인간의 끝없는 분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몹시도 취약한 존재가 세계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어떻게 됐든간에 자신의 진정한 자리를 찾기 위한 부던한 노력을 거치는 과정, 그것이 빈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빈자는 ‘프레카리아트’라는 표현으로 묘사된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Proletariat(프롤레타리아트)’와 ‘precarious(불안정한)’이라는 형용사가 합쳐진 단어로서, 저임금, 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노동 무산계급을 묘사하기 위해 등장한 표현이다. 이 단어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노동 시장이 유연화되는 과정에서 노동 불안정이 발생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에 더하여 프레카리아트 내에서도 위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정부의 여러 플랫폼, 언론의 칼럼을 통해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의제화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이들을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는 교육자본과 문화자본을 충분히 갖춘 이들로서, 그렇지 못한 이들인 ‘말을 잃은’ 프레카리아트와 분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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