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이해 ) 한국사 고중세시대(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 등) 관련 자유 주제, 삼국시대의 문화 – 신앙과 종교에 대해
한국사 고중세시대(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 등) 관련 자유 주제
삼국시대의 문화 - 신앙과 종교에 대해
한국사의 이해
한국사 고중세시대(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 등) 관련 자유 주제
삼국시대의 문화 - 신앙과 종교에 대해
고 중세시대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영향을 끼치며 생활과 문화에 영향을 준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불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불교는 세 나라에 모두 영향을 주어 불교 형태의 조형물, 사상, 건축 양식 등에 변화를 주어 기존에 존재하던 토착 신앙과 결합하게 되었고, 이것이 불교 사찰과, 불교식 공예품, 회화 등이 발달하고 만들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불교는 삼국의 문화 발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기존 삼국의 토착 신앙과 결합하여 저마다 특징적인 문화가 형성되도록 하였다. 이에 이 보고서는 당시 삼국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토착 신앙과 불교가 수용되고 들어오게 되는 과정, 그리고 이로 인해 변화된 삼국의 모습, 불교 신앙의 전파과정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1. 토착 신앙
토착 신앙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고대 국가의 신앙과 종교를 의미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이전에 토착 신앙을 포함한 원시종교가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토착 신앙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 핵심적인 종교였으나 불교가 들어오면서 갈등과 마찰이 발생하게 된다. 종국에는 불교와 융화되어 토착 신앙과 불교 모두를 포함하는 상징물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에 삼국시대의 각 국가가 어떤 토착 신앙을 가지고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알아보았다.
① 고구려의 토착 신앙
고구려의 토착 신앙에서 가장 특징적인 의례는 10월에 이뤄졌던 제사 의례가 존재한다. 이 제사 의례는 천신 신앙과 지신 신앙을 핵심으로 한 의례로 하늘과 땅을 대상으로 제사를 지낸 것으로 이를 ‘동맹’이라 불렀다. 이때 의복으로는 모두 비단과 금은으로 장식된 옷을 입었으며 동물을 잡아 희생제를 올렸으며 화려하게 거행하였다. 해당 의례는 화려한 장식과 진행 방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지배계층이 주도한 의례로 당시 고구려의 지배 관계에 대한 계층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고구려에서는 조상 숭배를 위해 왕의 신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조상 숭배의 모습도 보였다. 이때 왕이 즉위한 다음 해 봄에 조상의 묘에 가서 제사하였다는 내용을 통해 해당 의례가 즉위의례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여름에 가뭄이 나거나 홍수가 났을 때 임금이 평상시에 먹는 반찬 수를 줄이고 산천에 기도와 제사를 드리며 문제가 해결되기를 빌었으며, 사냥을 마친 이후에도 산천에 제사를 지니는 등 나라의 중요한 일이나 거사를 치른 후에는 제사 지니는 모습을 보였다.
② 백제의 토착 신앙
백제는 매년 4계절의 가운데 달마다 왕이 하늘과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여 1년에 4번씩 제사를 지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때 왕이 나서서 동물을 희생하는 희생 의례를 직접 치르며 이때 사슴을 이용하여 제사 지냈다는 것 볼 수 있다. 백제에서도 역시나 즉위의례를 위해 매년 정월에 시조묘에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중 동명묘는 기우제를 지닌 묘로, 동명묘가 농경 생활 및 생산과 연관이 깊은 묘라는 정보를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백제 역시 하늘과 땅을 대상으로 한 제사를 함께 지녔으며 이때 곡을 연주하며 축제 적인 분위기에서 제사가 이뤄졌음을 볼 수 있다.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났을 때는 왕이 제사를 지내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빌었으며, 풍년이 들었을 때 역시 하늘과 땅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제사를 지냈다. 무엇보다도 백제는 장례를 치르며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를 보여주었다. 이는 왕의 무덤과 장례를 치를 때 왕과 왕비가 묻힐 자리에 땅을 토지신에게 산다는 의미로 남겨진 매지권이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③ 신라의 토착 신앙
신라에서 천지신을 모시는 신궁을 세워 이들에게 제사를 지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신궁은 신라 내부의 국가 체제 정비와 사상 통일을 위해 설립된 것으로 토착 신앙의 핵심적인 설치기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후에 신라에 불교가 전파되었을 때 신라가 토착 신앙을 활용하여 불교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신라의 조상묘를 향한 제사는 시조묘외에도 다양한 기구를 설치하여 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신라는 시조묘가 5개나 되는 5묘제를 시행하였다는 것이다. 신라의 조상묘에 대한 제사는 최초에는 왕이 직접 나서서 하였으나 왕이 직위하는 경우를 제한 통상적으로 지니게 되는 의례는 이후 제관과 대신이 제를 지니도록 하였다. 이런 조상에 대한 제사 의례는 지배권을 확립하고 왕권을 강화를 위해 이뤄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front
국사편찬위원회(2003). 신편 한국사. 탐구당
김정호(2020.08). 사찰에 있는 산신각 어떻게 생겨났을까. 시니어매일
http://www.senior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3765
잘 참고하셔서 도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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