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성격과 의의
Ⅲ. 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Ⅳ. 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전쟁)의 전개 과정
1. 고부농민항쟁(1894.1.10)
2. 1차 농민전쟁(1894.5.4-)
1) 경제지향
2) 국가 민족
3. 화약과 집강소 활동(1894.5.30-)
1) 집강소 활동
2) 경제 지향
3) 농민적 토지소유 발전
4. 9월기포, 2차 농민전쟁
1) 제 2차 농민전쟁
2) 경제지향
3) 일본세력 축출 목표
Ⅴ. 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전쟁)과 전남세력의 호응
Ⅵ. 관민상화(官民相和)와 집강소 운영
Ⅶ. 나가며
참고문헌
농민전쟁에 참여한 농민군이 경제적 측면에서 궁극적으로 어떠한 체제를 지향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것은 농민전쟁이 진행도중에 패배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농민전쟁 진행중에 농민군들이 내놓은 여러 개혁안들을 통하여 그 지향점을 추정해 보는 수 밖에 없다. 이들 개혁안에 실린내용은 삼정에 관련되는 것과 상업문제에 관련된 것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농민군이 가장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삼정과 민고, 연역문제와 같은 봉건적 수취체제의 개혁이었다. 농민군이 봉건적 수취체제의 개혁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당시 농민군을 구성하고있는 각계 각층, 즉 요호부민층으로부터 빈농층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가장 심각하게 부딪히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따라서 농민군 지도부는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어있는 농민군의 역량을 결집하기위해 이 문제를 일차적으로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삼정문란의 책임을 이전의 민란단계에서는 각 군현단위의 수령, 이서층에 돌리고 있었던데 반해, 이제 농민전쟁의 지도자 전봉준은 동학군 통문에서 성명재상 생민도탄 하자민폐지본 유어이포 이포지근 유어탐관 탐관지소기 유어집권지 탐 의란극칙치 회변칙명 이지상야. 즉 민폐의 근본은 이서의 포흠에 있고, 이포는 탐관에 말미암은 것이며, 탐관은 집권자들의 탐람에 있다하여 그 궁극
○ 정진각(1978), 동학농민전쟁의 성격, 한양대 석사학위논문
○ 한우근(2000), 동학농민봉기,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황선희(2002), 동학혁명인가, 농민전쟁인가, 동학학보3, 동학학회
○ 한국역사 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 연구, 역사비평사
○ 한우근(1983), 동학과 농민봉기, 일조각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