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십자군 원정에 대한 고찰
1) 제1차 십자군 원정 (1096~1099)
2) 제2차 십자군 원정 (1147~1148)
3) 제3차 십자군 원정 (1189~1192)
4) 제4차 십자군 원정 (1202~1204)
5) 제5차 십자군 원정 (1218~1221)
6) 제6차 십자군 원정 (1228~1229)
7) 제7차 십자군 원정 (1248~1249)
8) 제8차 십자군 원정 (1270)
2. 십자군 원정의 실패원인
3. 십자군 원정의 결과
1) 제1차 십자군 원정 (1096~1099)
1096년 여름 프랑스의 노르망디, 툴루즈지방, 그리고 일부 독일 지방의 기사들과 봉건 귀족들로 구성된 십자군이 조직되었다. 그들의 제1목표는 콘스탄티노플이었다. 여기서 다른 세력들을 규합하여 비잔틴 제국의 보급을 받으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1097년 십자군은 니체아를 점령하고 소아시아를 거쳐 시리아 지방으로 행군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병사들을 잃었다. 1098년 안티오키아를 점령한 후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자 십자군은 맨발로 찬송가를 부르면서 열광하였다. 그들은 노도와 같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학살을 자행하였다. 1099년 십자군은 예루살렘에 라틴 왕국(1099~1187)을 세우고 가장 신앙이 독실한 고드프로아를 왕으로 선출하였다. 제1차 십자군 원정(1096~1099)은 여러 번의 십자군 원정 중 드물게 성공을 거둔 원정이었다.
2) 제2차 십자군 원정 (1147~1148)
1144년 셀주크 터키족이 다시 예루살렘 왕국 동북방의 에데사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유럽에 전해지자 성 베르나르(1091~1153)의 설교를 계기로 또다시 십자군이 결성되었다. 프랑스의 왕 루이 7세와 신성로마 황제 콘라드 3세 등이 참전한 이 십자군은 비잔틴 황제 마누엘 1세의 의심과 예루살렘 라틴 왕국의 군주제후들의 질시로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3) 제3차 십자군 원정 (118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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