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에 이르기까지
2. 영화의 시점
3.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4. 이상과 실제 사이의 간극
5. 비극적 말로가 던져주는 메시지
6. 재역전의 역전, 그리고 또 다시 `역전`
7. 결론 - 변화를 위해 행동하라!
어떻게 보면 우리가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삶을 개혁하는데 있어서의 `거짓된 겸손`이나 `자기합리화를 위한 연막작전` 또는 `게으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가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즉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도우며,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그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착취와 억압, 그리고 차별 등의 핵심 원인은 간단하다. 인간이 악해서이다. 인간이 이기적이어서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만 독점한다. 트레버가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듯이 이기적인 인간들로 채워진 이 지구는 `엿` 같아 보인다. 버크민스터 풀러는 지구는 `우주를 떠다니는 작은 우주선(행성)`이라고 말했다. 우리 모든 인류는 같은 운명에 처해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민족주의가 지나치다못해 서로 간에 전쟁을 그치지 않는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들을 착취하는 것을 두고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를 뿐이라고 태연하게 여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를 깨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인간의 사악함의 문제, 곧 `도덕적인 문제`이다. 트레버가 제시한 이론이 실제적인 것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행동`하려고 몸부림쳤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토피아적인 이론을 제시하는 것은 이제 식상하다. 문제는 행동하려고 하는 것이다. 북반구와 남반구간의 경제적인 문제, 종교 간의 분쟁, 낙태와 안락사와 같은 생명 윤리의 문제,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이라는 성윤리적인 문제, 핵무기를 비롯한 전쟁의 문제 등 이런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트레버의 충고를 새겨들어야만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낳은 사회, 즉 `유토피아`에 근접한 사회를 위해서라면 말이다.
`사람들은 너무 겁을 많이 먹는 것 같아요. 어떤 변화에 대해서요. 세상이 항상 그렇게 엿 같진 않은 것 같아요. 처지가 아무리 나빠도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바꾸기가 힘든가 봐요. 그래서 결국은 포기하고 자신한테 지는 거죠.`
존 하워드 요더『예수의 정치학』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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