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의 부활과 도시의 발전]
[도시와 상공업의 발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교황과 황제의 대립
[중세 문화]
동기 - 유럽사회의 안정(10~11c) - 농업생산력 발전
- 인구증가
- 봉건사회 안정
- 유럽사회의 팽창욕 - 개간, 개척
- 엘베동쪽 지역에 대한 식민운동
- 이슬람 세계에 대한 반격
- 셀주크투르크의 강성 - 11c 중엽 바그다드 점령(1055)
- 성지순례자 박해,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위협
- 소아시아 점령 : 경제적, 병력이 원천
- 동로마의 구원요청 : 로마황제(알렉시우스 1세)의 구원요청
→ 교황 우르반 2세가 성지회복 호소 → 클레몽공회의(1095)
의도 - 성지탈환
- 비잔틴 교회를 로마교회에 병합하기 위함
전개(1096~1270) : 8회 원정 → 실패
① 제 1 십자군 - 최초 출병(1096, 봄) - 오합지졸의 기사, 농민 → 헝가리에서 분쇄, 투르크군에게 격멸
- 정규십자군(1096, 가을) - 소아시아 함락, 에데사 백령 창건
- 예루살렘 탈환(1099, 7)
② 제 2,3 십자군 - 제 2 십자군 - 모술 태수 잔기가 북부시리아 회복, 1144년 에데사 백령 정복
→ 제 2 십자군 조직 but 실패
- 제 3 십자군 - 살라딘이 예루살렘 함락 (1187)
독 : 프리드리히 1세 → 단독출발 but 익사
→ 영 : 리처드 1세 -
- 대립→아크레점령(1191)→필립귀국
프 : 필립 존엄왕 -
⇒ 리처드․살라딘 협상 : 순례자들의 자유로운 예루살렘 출입 보장
③ 제 4 십자군 - 세속적 목적 작용하여 변질
- 이노센트 3세 호소 - 국왕 X
- 플랑드르 백 볼드윈+북 프랑스 기사들 + 베네치아 상인(짜라시 회복 요구)
→ 짜라시 점령 약탈(1020) → 이노센트 십자군 파문
- 비잔틴 제위 다툼, 콘스탄티노플 교역권(상인) → 콘스탄티노플 점령
- 라틴제국 수립(1204) - 블랑드르 백 볼드윈 황제로 옹립
④ 제 5회 십자군 이후와 소년 십자군
- 제 5 회 십자군 - 이집트 공격 → 다미에타 점령(1219) but 탈환 당함(1221)
- 제 6 회 십자군 - 프리드리히 2세 - 시칠리아 출신, 이슬람 잘 암
- 협상 : 예루살렘 회복(1229)
but 이집트 태수, 투르크인고용 → 예루살렘 점령(1244~1917)
- 소년 십자군 - 이노센트 3세 → 설교 → 프․독 계시 받았다는 소년 중심→ 소년십자군 결성
→ 악덕상인들이 노예로 팔아버림
결과 - 종교적 : 교황권의 쇠퇴, 교회의 권위 추락
- 정치적 : 봉건영주의 몰락, 왕권 강화
- 사회적 : 장원의 붕괴, 기사계급의 몰락
- 경제적 : 지중해 무역권 회복(동방무역 성행), 도시의 발달
- 문화적 : 비잔틴, 이슬람 문화의 유입
의의 : 중세 유렵 사회의 붕괴 촉진
- 중세 유렵이 크리스트교적인 통일체 였음을 입증, 유럽세계의 생명력과 팽창력 증명
→ 중세 유럽 = 신앙의 시대 → 진정한 종교적 열정과 신앙, 구제에 대한 갈망
- 이슬람에 대한 반격(활력, 팽창력) → 유럽중세문화의 발전, 변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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