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장으로서의 교육
2) 사회화, 수업으로서의 교육
3) 도야로서의 교육
2. 교육학의 흐름과 체계
1) 교육과 교육학의 기원
2) 교육학의 체계
3. 공교육과 사교육
4. 맺는 글
그러나 ‘훌륭하게 되는 첫 계단은 정직이다’라는 격언은 애써 쌓은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황우석 교수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만한 교훈이 되었다.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자랑스러운 국민적 영웅이 논문 조작으로 한 순간에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 사건이라고까지 하는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을 보면서 우리 조상들이 생활신조로 삼았던 대쪽 같은 선비 정신이 못내 아쉬워지기도 한다.
이희승은 수필 ‘딸깍발이’에서 선비정신을 논하면서 현대인은 극단의 이기주의에 밝다고 하면서 이는 현명한 것이 아니고 우매하기 짝이 없는 ‘제 꾀에 제가 빠져 속아 넘어갈 현명’이라고 하고 있다. 마치 이번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한 교훈이다. 이번 사태로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배우는 학생들에게 황우석 사태를 어떻게 해명해야 할 것인가 하는 교육 차원의 문제이다. 황우석 신화가 전국을 휩쓸 때 ‘황우석 박사님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자’ ‘황우석 박사님처럼 위대한 과학자가 되자’와 같은 각종 표어나 문구들이 학교를 도배할 정도였다. 이런 것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교육의 장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황우석 관련 서적을 읽으라고 했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또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모두가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부분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는 황우석 사태와 비교되는 면이 많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권위와 굴종에 눌려 그 많은 신하나 국민들 중 어느 누구도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할 때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사실대로 외쳤던 것은 누구였던가. 우리 사회의 그 많은 과학자들은 그동안 황우석 신화에 눌려 아무도 바른 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벌거벗은 것을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는 학생들과 자녀들에게 무엇이라고 변명할 것인지 참으로 곤혹스럽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거짓이 만연하고 이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도덕불감증에 깊숙이 빠져 있다. 국가 채무를 갚지 않기 위해 재산을 숨겨놓고 가진 재산이 없다고 하는 파렴치한 전직 대통령, 재임 시절 도청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전직 국가정보원장,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놓고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기에 급급한 일부 정치인들, 뇌물을 공여하고도 아는 바 없다고 태연하게 시치미를 떼고 있는 일부 기업인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니 가정과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자녀들에게 정직이라는 덕목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것이다.
더구나 2004년 수능 부정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도덕불감증이 2세들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으니 참으로 심각한 사회의 자화상이라 하겠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윗사람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아랫사람에게 용서를 구한다. 기업인들조차 정식 기자회견을 열어 머리를 깍듯이 숙여 자신들의 잘못을 전체 국민들에게 고하고 용서를 빈다. 반면에 우리 사회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라서 그런지 몰라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좀처럼 사과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과할 사람이 사과 받을 사람에게 윽박을 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더욱 유감스러운 점은 교육이 아노미(anomie) 상태에 빠져 있는 학생들에게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에 대하여 별반 논의를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조금 더 교육의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