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

 1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1
 2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2
 3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3
 4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4
 5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5
 6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6
 7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7
 8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8
 9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9
 10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10
 11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11
 12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12
 13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1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고전문학사] 기녀 문학에 대한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1.1. 기녀제도의 연원
1.2. 문제적 신분으로서의 기녀
2. 다수적 시각에 의해 형상화된 기녀의 모습
2.1. 기녀 외부집단의 창작품
2.1.1. 조선시대 기녀담(妓女談)에 형상화된 기녀
2.1.2.「주생전(周生傳)」에 형상화된 기녀
2.2. 기녀 내부집단의 창작품
2.2.1. 풍류의식을 반영한 작품
2.2.2. 기녀에 대한 다수적 시각이 반영된 작품
3. 소수적 시각에 의해 형상화된 기녀의 모습
3.1. 기녀 외부집단의 창작품
3.2. 기녀 내부집단의 창작품
4. 결론
5.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1.1. 기녀제도(妓女制度)의 연원
‘기녀(妓女)’란 본래 가무(歌舞)의 기예를 배우고 익혀, 나라에서 필요할 때에 봉사하던 여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나라 기녀 제도의 유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녀는 고구려 시대의 유녀(遊女)에서 비롯되어, 관료체계가 갖추어지면서 전국 관아에 배치되었다. 신라나 백제에도 기녀라고 추측할 수 있는 여성들이 있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김유신과 기녀 천관의 사랑 이야기, 신라의 원화제도 등에서 그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백제에도 ‘꽃쟁취’라는 유녀가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여비(女婢)를 훈련시켜 교방을 만들었다. 관아의 여악(女樂)에 등장 시켜 악기연주를 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기녀 제도가 본격적으로 정비된 것은 조선 시대에 들어서이다. 조선 초기 세종 조에 기녀를 국가 행사나 왕실의 풍류, 즉 국용(國用)으로 쓰기 위한 제도가 정비되었다. 기녀 후보자는 열다섯이 되어 기생명부에 오르면서부터 기녀로서의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서울 기녀인 경기(京妓)는 장악원에서, 지방 기녀인 관기(官妓)는 지방 소속의 교방 또는 창기소(娼妓所)에서 기녀로서의 교육을 받았다. 때문에 해당 관청의 관비에게 부과되었던 잡다한 신역(新役)에서는 해방될 수 있었지만, 악기와 가무를 연마하여 기악에 대비해야 했다. 이 같은 제도 하에서 기녀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당대의 고급 예술을 교육받을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 기녀는 고급 예술인이었다.

1.2. 문제적 신분으로서의 기녀
기녀는 악기와 가무를 연마한 고급 예술인이었지만, 모순적이게도 당대 최하층의 신분이었다. 기녀는 주로 관비(官婢) 중에서 충원되었다. 고아로 전락하였거나 기가(妓家)에 의지하면서, 혹은 빈곤하여 기가(妓家)에 팔린 양가녀(良家女)가 기녀가 되기도 했다. 사족녀(士族女)로서 세 번 이상 개가한 자나 혼인하지 않고 여러 남성과 육체적 관계를 맺은 자, 역적죄에 해당하거나 그 밖에 큰 죄를 저지른 대소 관리의 처자도 기녀로 충원될 수 있는 관비의 신분으로 격하 되었다. 드물게 지방 관아의 사령 자녀나 양가녀가 자진하여 기녀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녀의 화려한 생활에 현혹 되고, 또 고귀한 권문의 부실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사유가 어떻든 간에 기적에 오르면 기녀가 되었고,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기녀 소생의 딸이면 어미의 공노비 신분을 세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고급 예술인인 동시에 천민이라는 극명한 모순에서, 기녀라는 신분의 문제적 지점이 드러난다.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중세에서 고급예술은, 지배층의, 지배층에 의한, 지배층을 위한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지배층의 고급예술, 사상을 드러내기 용이한 문학 저변에 기녀는 그 모순 된 신분적 특성으로서 균열을 만들어 낸다.
기녀들은 유교 윤리가 엄격히 지배하고 있는 남성중심의 조선사회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했다. 그녀들은 ‘해어화(解語花)’라는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닌 ‘꽃(花)’ 즉 ‘물(物)’이었고, 당대 지배층이자 다수자였던 양반 사대부들을 위한 풍류와 유희, 향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백안시당하면서도 기녀들은 그녀들의 고급 예술적 소양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완성해갔고 문학작품 속에 자신들의 자의식을 투영해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녀의 자의식이 다시 당대 문학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기녀들이 어떻게 문학작품 속에서 형상화되었으며, 그 문학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의 본론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참고문헌
김명희, 『옛 문학의 비평적 시각』, 태학사, 1997.
박일용, 『조선시대의 애정소설-사실과 낭만의 소설사적 전개양상』, 집문당, 2000.
설성경 편저, 『춘향전 연구의 과제와 방향』, 새미, 2005.
유몽인, 『어우야담(於于野談)』,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 연도?
이상구 역주, 『17세기 애정전기소설』, 월인, 1999.
정명기, 『야담문학연구의 현단계1』. 보고사, 2001.
정하영, 『춘향전의 탐구』, 집문당, 2005.
조광국, 『기녀담 기녀등장소설 연구』, 월인, 2000.
조광국, 『한국 문화와 기녀』, 월인, 2004.
황진이, 문정희 엮음, 『기생시집』, 해냄,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