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인물소개
Ⅲ. 메리 로빈슨의 권력과 리더십 요소 분석
1. 권력의 원천
(1) 권력의 원천에 대한 이론
(2) 메리 로빈슨의 권력 분석
2. 권력의 규모와 강도
(1) 권력의 비중
(2) 권력의 지배권
(3) 권력의 범위
3. 리더십 분석
(1) 메리 로빈슨의 리더십 유형
(2) 변혁적 리더십의 요소와 적용
3. 메리 로빈슨의 리더십 요소와 발현 과정
(1)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도전의식과 용기
(2) 확실한 조직-개인의 목표
(3) 포기하지 않는 강한 추진력
Ⅳ. 결론 ; 우리의 비전에 적용
1. 메리 로빈슨의 리더십을 배우고자 하는 개인적 이유
2. 본받고자 하는 리더십
(1) 강한 신념
(2) 실용적인 지식과 경력
(3) 제도와 지위의 적절히 활용
(4) 주어진 장애물을 극복하는 능력
(5) 탁월한 언어전략
아일랜드는 새로운 유럽의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일랜드가 지금의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아일랜드의 최초 여성대통령인 메리 로빈슨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녀가 당선 될 당시의 아일랜드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의 보수적 국가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고 결국에는 전 국민적인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20세기임에도 여전히 19세기적 규범과 사고에 머물러 있던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에서 8만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임기 말년 지지율 93% 라는 결과에 이르기 까지 그녀는 어떻게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아일랜드를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를 로빈슨이 재임기간 동안 발휘했던 리더십을 분석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그래서 여성 지도자로써 갖추어야 할 리더십의 요소를 배우고자 메리 로빈슨을 인물로 선정하였다.
Ⅱ. 인물소개
1944년 아일랜드 마요 주(州)에서 태어난 메리는 의사였던 부모 밑에서 풍요롭게 성장했다.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은 할아버지였다. 변호사였던 할아버지는 메리에게 '법은 약자에게 정의(正義)를,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메리는 수도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대학 법대를 수석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트리니티 대학교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었다.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트리니티 대학교 법학 교수를 지냈다.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뜬금없이 피임, 낙태, 이혼의 합법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유복하게 자란 그가 소외계층의 인권 문제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인 것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이타적인 사고방식과 하버드 대학 유학 시절의 영향이 컸다. 법학석사 과정을 밟을 때 동기들과 함께 빈곤퇴치 활동, 민권 운동 등 인권 옹호를 위한 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살아갈 인생의 방향을 찾았다고 했다. 보수적인 편견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던 그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산지식들을 조국 아일랜드를 변화시키고 소수 집단의 권리를 찾아주는 데 써야겠다고 다짐했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리고 노동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선출되었고, 의원 활동을 통해 구습 때문에 오랫동안 금지되어온 것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개혁을 시도했다. 1970년 피임 합법화를 주장하여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켜주고자 했고, 1976년에는 이혼의 합법화를 제안하여 결혼의 자유를 주창했다. 또 남녀의 동등한 임금, 여성의 판사직 임명, 서자의 유산상속권 쟁취, 사회복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국내의 바쁜 일정을 모두 소화해낸 메리 로빈슨은 국제문제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오랜 시간 굳어진 인습과 법 제도들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로빈슨 여사는 포기하는 대신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오래된 법을 연구했다. 그의 진보적인 활동은 많은 보수주의자들과 남성들로부터 비난과 반발을 받았으나, 그에게는 '여성들'이라는 거대한 지지자들이 있었다. 결국 그의 노력으로 1979년에는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에 한해서 피임이 허용됐고, 1985년에는 18세 이상이면 의사의 처방 없이 누구나 피임약을 살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됐다
1990년 좌익계 독립사회당 후보로 나선 로빈슨 여사는 전 부수상 겸 국방장관인 브라이언 레니한을 불과 8만여 표 차이로 제치고 그 해 11월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됐다. 아일랜드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여성 유권자들이 집안에서 요람을 흔드는 대신 구제도를 흔들어 갈아치웠다"고 표현했다. 로빈슨 여사의 당선에 대해 일간지인 아일랜드 타임스는 "아일랜드가 편협하고 여성에게 가혹했던 과거에서 열린 미래로 나아가는 첫 신호"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아일랜드에서 불었던 가장 큰 변화의 바람은 여성들이 자신의 의사 결정을 믿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1990~1997년까지의 재임 기간 '국민의 여성'임을 자처했던 로빈슨 여사는 탁월한 정치력과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활동으로 대통령의 존재와 여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그는 내전지역인 북아일랜드를 4차례나 방문하여 과격 인사들을 만나 전쟁 상황을 평화로 전환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가 의원 시절부터 주창했던 이혼 문제가 1995년 판례를 통해 합법화되었을 때 국민들의 지지는 더욱 커졌다. 1996년 아일랜드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만나 700년 동안 깊어진 양국의 적대관계를 개선하려고 했으며, 대통령 관저를 활짝 열어놓고 여성 및 실직자 단체들을 초대, 위로하는 등 소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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