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리더십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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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정희 리더십 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I. 가정배경




II. 시대적배경



III. 업적




IV. 리더십 분석

1. 리더십 유형연구 (리더십 그리드) : 권한-순응 형
2. 특성 연구
3. 카리스마적 리더십 - 주변인을 압도하는 인간 박정희
4. 과업 주도형 리더십 ( 권위주의적 리더십 )





Ⅴ. 한계와 시사점

본문내용
Ⅰ 가정 배경

1. 소년에서 군인으로
1. 가족 배경과 ‘유기불안’
(1) 모성의 공간
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박성빈-백남의 부부의 5남 2녀 중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성빈은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몰락 양반이었다. 그는 본래 상당한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부유한 계층 출신이었다. 즉 박성빈은 가슴속에 얼마간의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망국의 시기에 기울어가는 가세를 속절없이 방치하면서도 권위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구한말의 몰락 양반이었던 것이다. 어머니 백남의는 박정희에게 훨씬 구체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당시의 농촌 여성들과 달리 권위적인 남편에게 종속적이지 않았고, 강직하고 긍정적인 성품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백남의에 대한 상모리 사람들의 평가는 “자존심이 대단한 여자”, “독하면서도 가냘픈 여자"이었다. 가난, 자존심, 독하다는 표현은 그녀가 처한 환경이 결코 양호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만, 그녀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녀들을 양육했던 것 같다. 박정희의 표현에 따르면 “새벽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고 다음에 나를 깨우신다. 겨울에 추울 때는 세숫대야에 더운 물을 담아 방안까지 들고 와서 아직 잠도 덜 깬 나를 세수를 시켜주시고 밥을 먹여주신다.”고 할 정도로 그녀는 자녀에게 헌신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위의 인용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듯이 박정희가 어머니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백남의는 그에 대한 모종의 애처로움과 연민의 정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박정희는 여러 차례의 낙태 시도 끝에 태어난 데다, 어린 시절 내내 건강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낙태시도를 둘러싼 그녀의 죄의식은 극진한 사랑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녀는 여러 가지 가정환경으로 인해 박정희에게 더욱 많은 사랑을 쏟았던 것 같다. 박정희의 이라는 책에 보면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압도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아버지와 형과 누나 및 친구나 학교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익명의 보조적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박정희와 어머니 사이에는 보통의 모자 관계와 달리 한 가지 불신의 가능성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낙태 기도 사건이다. 백남의는 최소 6~7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아이를 지우려고 했는데, 이는 낙태가 자연스럽지 않았던 시대에 그처럼 집요하게 모성을 포기해야 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정박아였던 박정희의 형 때문인 것, 남편에 대한 사랑이 제한적이었다는 것, 백남의의 생활환경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보다 큰 문제는 백남의의 낙태 기도 이야기가 식구들 사이에서 재미있게 주고 받는 전설 같은 이야깃거리였다는 것이다. 즉 박정희는 자신이 폐기될 수도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자랐다. 이러한 것이 어린 소년에게 아무런 충격을 주지 않았으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박정희는 어머니와 만족스러운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의 유기불안이 모성의 공간에서 시작되었다는 특이점을 갖고 있었다.

(2) 권위적인 아버지와 유기불안
아버지가 박정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증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가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상속권을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았던 사람이 자신의 가족과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훗날 박정희는 아버지에 대해 남성성을 강조하여 표현했으나, 아버지는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긍정적인 인물로 등장하지 않는다. 박성빈이 박정희의 기억 속에 비교적 명확한 형태로 등장하는 사건은 그에게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요했던 때이다. 또한 박성빈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기억은 대부분 그가 술에 취해 있었던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박성빈은 아버지와 동생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결혼 20년만에 아내의 고향인 상모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도모 한다. 그러나 그가 가정의 경제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는 증거를 찾아 보기도 힘들다. 박정희는 부모 형제와의 나이 차이가 심하게 벌어져 있는 막내아들이었다. 이와 같은 나이 차이는 박정희로 하여금 형제들과 같은 놀이집단에 들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부모 형제들로부터 "가장 작은 아이“라는 대접을 받도록 했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러한 권위적 가정환경 속에서 심각한 유기 불안을 경험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유기 불안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다. 박정희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자주 체증을 앓았으며 야맹증을 앓기도 했고 극단적으로 발육부진을 보였다. 이런 사건들은 장기간에 걸쳐 모종의 정신적 긴장을 겪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같은 긴장은 또 다시 비정상적인 발육부진을 초래하고, 신체의 왜소함은 다시 또 그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또한 그는 막내라는 사실, 가족의 경제적 빈곤, 어린시절 화로에 크게 데인 화상, 아버지가 동학혁명에 가담한 일로 ‘아버지가 처형되었더라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 다른 형제들과 현저하게 구분되는 신체적 왜소함, 권위적인 아버지의 경제적 무능, 이에 대립되는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헌신, 명랑함이 결여된 형제들 간의관계, 초등학교 1학년 때 맞이한 넷째 형의 죽음 등으로 여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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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연재하며.....,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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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재 스타일로 본 역대대통령 비교, ‘97년 3월 20일.
- 중앙일보
김계원 전비서실장 “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