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스마르크 시대에서 사라예보 사건까지
3. 제1차 세계대전의 내재적 원인
4. 삼국동맹과 삼국협상 6개국의 국가별 전쟁책임
5. 제1차 세계대전의 국제질서에 대한 영향
6. 결론
1914년 6월 28일 일요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졌다. 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던 세르비아의 비밀 결사 소속 한 청년이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권총으로 암살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사라예보'사건이다. 이 사건이 1차대전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기는 하지만 전쟁의 검은 그림자는 이전부터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19세기 말 유럽의 열강들은 독점 자본주의 단계로 들어서면서 식민지 쟁탈전에 나섰으며 이미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충돌을 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아프리카, 발칸 반도, 동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시장과 식민지 분할을 둘러싸고 제국주의 국가들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3국 동맹국과 러시아, 프랑스, 영국의 3국 협상국으로 나뉘어져 대립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런 대립의 한 초점이었던 발칸 반도는 당시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릴 정도였다. 15세기 이래 발칸 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17세기가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고 이를 기회로 유럽 열강세력들은 저마다 발칸반도에 대한 지배욕을 드러내게 된다. 여기에 발칸 반도의 여러 민족도 독립의 의지를 높여가고 있었는데 이들은 각각 아직 힘이 미약해 이웃의 강대국인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결국 이런 독립 의지의 고양과 열강들의 간섭이 발칸 반도를 국제적인 분쟁의 중심지로 만들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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