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는 1964년 에드문트 후설의 을 번역한 공로를 인정받아 장 카아비예스 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965년 고등사범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다음 해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볼티모어 콜로키움에 참가했는데, 이는 이후 데리다가 미국을 자주 방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7년에는 , , 등 첫 저작 3권을 출간했다. 1979년 소르본느의 철학 강의를 맡으면서부터 데리다의 정치적 참여는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1981년 체코의 저항 지식인들과 모임을 연 뒤 체코 당국에 체포, 구금됐고, 이후에도 넬슨 만델라 구명운동과 인종차별 및 동성애자 차별 철폐운동에 참여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아랍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최근에도 걸프전과 9.11 동시다발테러, 유럽통합 등에 대해 발언하며 실천적 지식인의 길을 걸었다. 그의 철학이 난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유는 기존의 정돈된 철학적 체계나 용어, 고전적 문체 등을 스스로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데리다의 사유가 근대 인류문명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진리’와 그로 인해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 데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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