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론] 김영삼대통령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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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도자론] 김영삼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김영삼은 누구인가?


2.지도자의 자질과 덕목

1) 역사적 비전능력
2) 정치적 분별능력
3) 경영적 집중능력
4) 정서적 조절능력
5) 도덕적 희생능력


3. 결론
1) 긍정적인 측면
2) 부정적인 측면

본문내용
1.김영삼은 누구인가?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 출생하였다. 김영삼은 어려서부터 자신을 ‘미래의 대통령’이라 칭하곤 했다고 한다. 1952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무총리 장택상(張澤相) 의 비서가 되었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3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된 후 5·6·7·8 ·9·10·13·14대 의원에 당선됨으로써 9선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980년 이후 전두환(全斗煥) 정부에 의해 2년 동안 가택연금되어 정치활동을 못 하였 고, 1983년 5월 18일~6월 9일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전개, 5공화국하에서의 민주화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 1985년 김대중(金大中)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 (민추협) 공동의장직을 맡았고, 신민당 창당을 주도하여 신한당을 와해시켰다.
1987년 통일민주당을 창당, 총재가 되고 그해 12월 1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89년 6월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한국 정치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소련을 방 문하였다. 1990년 민주정의당 총재 노태우(盧泰愚),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金鍾泌)과 통합, 민주자유당을 창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92년 12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 1993년 2월 취임함으로써 32년간의 권위주의 적 통치를 종식시키고 문민(文民)정부를 출범시켰다. 1994년 마틴루터킹센터가 수여하는 세계적인 인권운동 평화상인 비폭력평화상을 받았으며 1995년 뉴욕에서 열린 국제연합 50주년 기념총회에서 연설하였다.
그의 성향은 이후 한국의 민주화 투쟁과정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즉, 현실에서 투쟁하는 투사였고, 현실 상황에 대응하는 행동주의 자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김영삼은 청년기에 정치인이 되려면 웅변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정부수립 기념 웅변대회에 참가해 2등으로 외무장관상을 받았는데 당시 외무장관으로 장택상이었으며 이러한 인연으로 대학 3학년 때인 1950년 4월 장택상의 선거 캠프에 참여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서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 빠른 시기에 현장정치를 경험하기 시작하게 된다.

2.지도자의 자질과 덕목

1) 역사적 비전능력

-문민민주주의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를 문민민주주의 시대를 열게 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로 규정했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새로운 정부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개혁을 최대 과제로 부각시키면서 기존 군사정권과의 단절을 꾀하였으며, 이를 통해 정권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그는 개혁의 당위성을 외적으로는 당시의 변화하는 시대상황에서 , 내적으로는 한국의 병리적 사회현상에서 찾았다. 그는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세계는 경제전쟁, 기술전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변화하는 세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 것이고 도약하지 않으면 낙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신한국‘, ’국제화‘, ’세계화
김영삼 대통령은 "부정부패의 척결, 경제를 살리는 일, 국가기강을 바로잡는 일"이 세 가지의 당면과제를 제시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초반 특히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개혁 작업에 대부분의 역량을 쏟았는데, 그에 따르면 이는" 신한국이라는 집을 짓기 위한 정지작업"으로써의 의미를 지닌다. 정지작업은 "훌륭한 새집을 짓기 위한 것"으로, 개혁을 위한 선행작업 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김 대통령은 '신한국'의 실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마치 '신한국' 건설이 '한국병 없애는 작업'처럼 이해되어 개혁이 지향하는 적극적이고도 미래 지향적인 요소를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정상회의 후 호주 순방 길에 '세계화'라는 국가전략 구상을 또 밝혔다. 세계 화 구상은 21세기에 대비한 국가발전을 위해서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중심국가로 성장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