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들이 믿어왔던 지식인들은 참으로 그 모습이 말이 아니게 달라져서 소일본인화되어 버리고, 그들이 내뱉는 말이라곤 학병지원을 독려하는 강연, 전시체제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선무성 시국강연 따위로 분주하던 시절이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었고, 신뢰할 수 있는 한마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농촌만큼은 제국주의자들의 극악한 농촌파괴정책에도 불구하고 혈연과 거주지로 함께 엮어지는 생활공동체의 끈끈한 유대를 여전히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 백 석의 본명은 백 기행. 평안북도 정주군 출생이다. 역시 동향인 관서 출신의 시인 김 소월과는 당시의 유명했던 사학 오산고보의 선후배 사이로 백석은 선배시인 소월을 매우 흠모하고 존경했지만, 서로 만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소월의 시에도 민요가락에 실어서 표현되는 관서지방 특유의 정서가 있지만, 백석은 소월보다 어쩌면 훨씬 더 짙게 마천령 서쪽지역인 평안도 쪽의 정서를 특이한 문체로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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