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 시인 백석의 인물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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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본문내용
시인 백석

시인 백석(본명:백기행)은 평북 정주에서 1912년에 태어났다. 신식 사진기술을 가진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기행은 뒤에 필명을 석이라 짓는다. 백석. 그가 왜 백석이라 필명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소재들인 흰 당나귀, 흰밤, 흰 바람벽, 백화(白樺, 흰 자작나무), 설의(雪衣) 등의 흰 이미지와 백석은 묘한 매력과 인상을 우리에게 준다. 어린 백석은 오산학교를 다녔다.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는 현대사의 왜곡된 물줄기를 바로 잡고자 하는 정신이 살아 숨쉬는 배움터였다. 1907년 민족정신 고취와 인재양성을 위해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학교는 유영모, 장지영, 이광수, 염상섭, 신채호 등이 교사로 재직했고 김억, 백인제, 김소월, 함석헌 등의 인재를 배출한 곳이었다. 고향 정주는 어린 백석의 문학적 감수성과 지적 호기심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정신적 터전이 되었던 것이다. 오산고보를 졸업하였지만 백석은 집안형편상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다. 그때부터 그는 습작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1930년 1월, 유일한 소설인 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백석은 조선일보의 후원으로 동경의 명문대학인 청산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영문학을 배웠다.

시인 백석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서 들어간 백석은 비로소 문인의 길로 들어선다. 잡지 의 편집 일을 맡았던 그는 이듬해에 시 을 발표하였고, 다음해에 33편의 시를 모아 첫 시집 「사슴」을 발표하면서 문학계의 시선을 받게 된다. 100부 한정판으로 발행한 이 시집은 , ,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실리면서 그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시인 윤동주는 그의 시집을 사지 못해 서점에서 며칠 동안 쭈그리고 앉아 그의 시를 노트에 베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시인 백석은 그 뒤 , 등 주옥같은 시들을 발표하지만 시집을 내지는 못했다. 시집을 통한 안정적인 문인의 삶으로 살기엔 놓여진 시대현실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그 뒤 백석은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다가 다시 조선일보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일제의 족쇄는 어느 곳에나 잔재해 있었다. 백석은 친구들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한다. 일제의 식민현실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시를 쓰고자 했다. 만주에서 세관원, 농부, 번역가의 일을 하면서 쓴 당시의 시들은 이전 시들에 비해 시적 반경이 깊고 넓어졌다는 평을 듣게 되었고 백석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후에 일본의 유명한 문인 노리다께 가스오는 그의 시에 매료되어 뛰어난 시인 백석, 무명인 나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백석을 흠모했다고 전해진다.

전후 백석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백석은 북에 남았다. 자신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정주를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북에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시들은 금서가 되어 있었다. 50년대 이후 그의 활동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아동문학에 관심을 가진 백석은 1957년 그 동안의 시들을 모아 동화시집 「집게네 네형제」를 발표하였다. 집게네 네 형제, 달래가 되어버린 어린 종 오월이, 정체성을 찾고자 욕심쟁이 검복에게 대항하는 오징어, 개구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