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Ⅰ. 예수의 교사성 (독창성, 근거)
- 한겨레
Ⅱ. 예수의 교육관 (교육철학 혹은 교육이념)
- 이지연
Ⅲ. 예수의 교육원리 (원리에 대한 설명, 근거)
- 고주현
Ⅳ. 예수의 교육방법 (방법에 대한 설명, 근거)
- 홍지수
Ⅴ. 교육내용 (내용에 대한 설명, 근거)
- 이지현
참고문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이다. 크리스마스는 세계인의 축제처럼 모두가 즐기는 날이 되었고, 특정 시기에 교황이 보내는 메시지에 사람들은 현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고, 자신에 대한 성찰도 하게 된다. 다른 종교의 훌륭한 지도자들도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만큼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종교도 드물다. 어쩌면 이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인 예수의 삶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어서는 아닐까? 혹은, 그의 가르침이 현재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연 예수는 가르침을 준 교육자라고 볼 수 있는가? 그가 교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가?
실제로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모습에서는 교사로서의 정식 교육을 받았음은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예수를 정신적인 지도자로 보며, 큰 가르침을 주는 교육자로 보는가? 실제로 많은 종교 관련 서적에서 이에 대해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유일하게 예수에 대해 가장 세밀하게 기록했다고 볼 수 있는 성경을 기준으로 그가 갖춘 교사성, 교육관, 교육원리 등을 분석하여 그가 정말 교육자라고 불릴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Ⅰ. 예수의 교사성 -한겨레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성경에서 예수의 교육 과정에 대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교사로서의 교육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그는 ‘왜’,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가르침을 주며, 지금까지도 그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 훌륭한 정신적 지도자로 불릴 수 있는 것일까?
우선 그에게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만한 지식이 있는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정식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으니 자세히 확인은 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소년 시절, 유대교의 일종의 축제라 볼 수 있는 파스카 기간에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 그는 성전 안에서 율법 교사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뛰어난 지혜를 가졌다고 한다(루카 2, 41-50). 이는 그가 말 그대로 어렸을 때부터 비상한 재능을 지닌 인물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으며, 그가 유대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아마도 이러한 영향으로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많은 이들에게 설교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그가 궁극적으로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설교를 한다고 한들, 그것이 듣는 일반인들에게 설득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은 율법 교사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권위를 느낀다(마태 7, 28-29; 루카 4, 32). 이는 그의 가르침에 진정성과 호소력이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청중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 하여라.’ 라고 강력하게 성토할 만큼, 자신의 가르침에 확신이 있었고 청중들과 제자들을 강하게 이끌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또한 그는 단식 논쟁에 대해서는 포도주와 가죽 부대의 비유(마태 9, 14-17; 마르 2, 18-22; 루카 5, 33-39)를 들고, 씨 뿌리는 사람(마태 13, 1-9; 마르 4, 1-9; 루카 8, 4-8), 겨자씨의 비유(마태 13, 31-32; 마르 4, 30-32; 루카 13, 18-19) 등 다양한 비유로 하느님 나라와 그를 믿는 이들이 지켜야할 소명 등을 전한다. 이에 대해 예수는 ‘허락되지 않은 자에게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하지만(마태 13, 10-17; 마르 4, 10-12; 루카 8, 9-10), 실제로 이런 비유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다. 즉 다시 말하면 이렇게 쉬운 설명을 함에도 자신이 가르치는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을 믿는 자로서 지켜야할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진정한 신앙인이라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예수는 형식적인 율법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유대교에 대한 저항과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예수 본인 또한 새로운 계명을 제시한다(마태 22, 34-40; 마르 12, 28-34; 루카 10, 25-28).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형식만을 강조하는 유대교의 계명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렇기에 그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기도 한다(마태 23, 1-36; 마르 12, 38-40; 루카 11, 39-52). 이렇듯 기존의 유대교의 교리나 율법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는 예수는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는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산상 설교(마태 5-7장)에서도 볼 수 있듯, 특정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가르침을 전했다. 특히 어린이들을 사랑한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율법 교사와 같은 많이 배운 자가 아닌, 어린이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말하며, 형식 보다는 수용과 이해, 순수함을 강조했다(마태 19, 13-15; 루카 18, 15-17; 마르 10, 13-16).
가장 큰 계명을 사랑이라고 천명한 예수였기에, 그는 가르침에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먼저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며(마태 4, 18-22; 마르 1, 16-20; 루카 5, 1-11) 또한 많은 민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요한 복음서
이창국,「예수의 사상에 대한 교육학적 고찰」, 『論文集』28, 1990. 225-240쪽
구본만,「예수 그리스도의 교육론에 근거한 전인 교육과정 연구」, 가톨릭신학대학교. 1999
NAVER 백과사전
최근순,「기독교 교육이론과 예수님의 교육방법 연구」, 2002.
가톨릭인터넷goodnews: http://info.catholic.or.kr
헤르만 하렐 호온,「예수님의 교육방법론」,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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