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냉전의 등장배경
2. 냉전의 고착화
① 1차 베를린 위기(1948~1949)
② 한국전쟁(1950~1953)
③ 2차 베를린 위기(1958~1961)
3. 냉전의 전이
4. 소련의 몰락
5. 탈냉전 시대
자료출처
2차세계대전의 추축국인 독일-이탈리아-일본의 견고한 체제가 무너지고, 이제 승전국이 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진영은 전후처리문제로 서서히 갈등구도를 이루게 된다. 독일을 기점으로 동쪽은 소비에트 연방이, 서쪽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주의 진영이 각각 분할통치하게 된다. 이러한 분할은 양측은 모두 임시적일거라고 낙관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분할은 냉전이 끝날때까지 계속 되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체제였고, 이념을 떠나서도 두 진영은 서로의 거대한 군사력과 정치력을 은연중, 혹은 노골적으로 경계할수 밖에 없었다. 세계는 조금씩 새로운 양극체제로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소련의 공산주의는 많은 수의 지식인과 피지배계층을 유혹하였고, 미국은 소련의 이러한 영향력을 막고자 유럽전역에 걸쳐 대규모 지원을 시행한다.(마샬플랜)
2. 냉전의 고착화
① 1차 베를린 위기(1948~1949)
미국은 서독의 안정화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미국은 1948년에 결국, 동독을 회복하리라는 기대를 접고 서독만의 화폐개혁을 단행한다. 서독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계속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서독만의 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계산에서다. 이에 반발한 소련 및 동독정부는 동독영토내에 있던 서베를린(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시는 동독의 영토에 있었으나, 동독과 서독이 나누어 통치하였다.)으로 향하는 모든 육로를 봉쇄하고, 서베를린을 고립시키고 만다. 미국은 이런 가혹한 처사에도 불구하고 화폐개혁을 단행함은 물론, 서베를린에 군용기로 생필품을 공수하기에 이른다. 결국 소련과 동독정부는 그만 지쳐서 1여년간 계속되었던 서베를린의 봉쇄를 풀고만다. 미국과 소련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서로간을 더 이상 인정할수 없는 관계를 확인하고 만다. 세계는 이제 어쨌든 한 진영을 선택해야만 살아 남을수 있게 되어간다.
② 한국전쟁(1950~1953)
냉전체제중 미국과 소련이 직접 갈등을 일으킨적은 드문 일이다. 서로는 서로의 강력한 힘을 잘 알고있고, 직접 맞붙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냉전기간중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은 냉전 당사국이 아닌 제 3국에서의 분쟁으로 표출되었으며, 심화될 경우에는 대리전의 양상까지 띄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냉전시대 대표적인 대리전형태의 분쟁이다.한국은 냉전체제이후, 추축국의 하나인 일본의 무장해제를 위해 한국을 양 진영이 분할통치함으로써, 안정을 찾는듯이 보였다. 하지만, 곧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남침이 일어났다. 미국을 위시한 자유주의진영은 곧바로 남한에 군사적 지원을 하였고, 끝날듯 하였던 전쟁은 3여년이나 걸려 결론을 맺지 못하고 냉전체제가 끝난 현재까지도 휴전상태로 남아있다. 한국전쟁은 냉전체제를 더욱 견고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냉전체제의 성립이후 최초로 양 진영의 물리적 충돌이라는데에서 의의가 깊다.
③ 2차 베를린 위기(1958~1961)
1차 베를린 위기 이전, 동-서 베를린의 주민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차 베를린 위기 이후, 동독정
국제정세의 이해, 한울, 유형석 저, 2001
냉전이란 무엇인가, 역사비평서, 베른트 슈퇴버 저, 2008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 사회평론, 존 루이스 개디즈 저, 2002
Natural Resources Defence Council
The Military Balance, London,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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