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박노해의 작가론과 작품론 `이불을 꿰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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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시인 박노해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 환경이라는 최악의 한계 상황을 기어서, 낮은 포복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노동자 시인이다. 필명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노해는 고흥의 동강국민학교를 거쳐 벌교중학교를 마친 뒤 서울에 올라와 1977년에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한다. 객지를 떠돌며 노동과 행상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어머니를 만나기위해 그는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는다. 가난한 집안과 전라도 태생, 게다가 '빨갱이'의 자식으로 철저하게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는 최저 빈민 계급 출신인 그의 눈에 '서울'은 가난한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죽음의 도시'로 비친다. 그래서 서울은 시인에게 "작은 환희가 절대적인 죽음 위에 피어나고 있는 땅, 거대한 강물처럼 흐르는 슬픔 위에 화려한 네온사인처럼 반짝이는 웃음들, 미도파 백화점 앞의 부유한 얼굴들과 천막촌의 시들은 미소들……. 아 서울아, 기다려라, 내 다시 돌아와 너와 싸우리라. 나는 꼭 정치가가 되어 이 죽음의 도시를 갈아엎으리라."는 마음을 먹게 한다. 시인은 상업 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한 뒤 삼원철강에 취직하는 한편 향린교회 청년부와 야학 모임에서 활동한다. 1982년께 군대에 다녀온 그는 야학 일을 하다가 만난 김진주와 결혼하고, 안남 운수에 취직한 뒤 본격적으로 노동 운동에 투신한다.
1983년 그는 황지우, 김정환, 김사인 등이 꾸리고 있던 동인지 2집에 「시다의 꿈」,「하늘」, 「얼마짜리지」,「바겐세일」,「그리움」,「봄」 등 여섯편의 시를 발표하며 '얼굴없는 시인'으로 문단에 나온다. 시인의 신원은 오랫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가린 채 그에 대한 갖가지 유언 비어성 풍문만 떠돈다. 박노해는 1984년 『노동의 새벽』을 '풀빛'출판사를 통해 내놓으며 1980년대를 관통하는 뜨거운 상징이 된다. 『노동의 새벽』이 나오기까지 시인은 군자동 섬유 공장, 청량리 공사판, 성수동 영세 공장, 안양의 버스회사 등에서 노동자로 전전하며 '노동자 시인'이기에 앞서 '철저한 조직 운동가'가 되기 위한 단련의 시기를 거친다. 이렇게 7년의 세월을 보낸 뒤 비로소 내놓은 것이 『노동의 새벽』이다. 시인 자신은 『노동의 새벽』의 출간 의미를 "뼈저린 자기 부정과 해체이자 불철저한 나 자신과의 투쟁"으로 규정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