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붉은악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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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중문화] 붉은악마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풀어내는 말

① 촉진제

②복합성

Ⅲ. 정리하는 말

Ⅳ. 마치는 말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월드컵 역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로 수백만의 시민들이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열광적인 응원축제를 벌인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화가 부재했던 한국 사회에 있어서는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수백 명의 붉은 악마회원들이 광화문에 모여 처음 거리응원을 벌였을 때, 많은 시민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긴 했지만, 붉은 악마들과 함께 응원에 동참하는 것은 꺼려했다. 월드컵 전초전인 컨페더레이션스컵과 북중미 골드컵, 그리고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 등 유럽 강호들과의 평가전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광화문에는 붉은 악마 응원단이 모여 일사불란한 응원을 펼쳤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많아야 수 천명에 불과했고, 그것도 거리응원의 메카 광화문에 국한된 특별한 현상이었을 뿐이다. 프로리그 경기장에서조차 서포터즈들의 응원을 관중은 호기심으로 보았을 뿐 가담하지 않았고 일부는 시끄럽다고 비난과 야유를 보낸 것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월드컵이 개막된 뒤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이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월드컵 첫 승을 올린 날, 전국에서 50여만의 거리응원인파가 몰린 뒤로 대미국, 대포루투갈 전에는 200만, 대이탈리아전 400만, 대스페인전 600만, 대독일전 700만, 대터키전 300만 등 월드컵 개막한달 동안 거리에 쏟아져 나온 시민은 줄잡아 2,400만에 달한다. 건국이래(또는 단군이래) 하나의 이슈나 행사를 놓고 이렇게 많은 시민이 한꺼번에 거리로 나온 일은 없었다. 붉은 악마 운영진조차도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응원에 참여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참여 그 자체로 그치지 않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백만의 시민들은 모두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고,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온몸에 페인팅을 하고, 태극문양을 이용하여 각종 스타일을 자유롭게 연출했다. 종전까지 경건함과 금기, 지배의 상징적 수단으로 외면했던 태극기와 태극문양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개성을 뽐내는 스타일로 변화했다. 또한 경기가 끝나고 난 후 젊은 세대들은 수백 명씩 몰
참고문헌
김창남(1998)- 대중문화와 스포츠 서울: 한울아카데미
김창남(1998)- 팬과 매니아. 대중문화의 이해 서울: 한울아카데미
임현진, 정홍익, 박홍규(1991)- 스포츠사화학을 향하여
스포츠 사회학 서울: 나남
이지원- 월드컵과 신공동체문화
최상천- (2002) 비 더 레즈
고수유- (2002) 붉은 악마 출판사: 리더스
이어령- (2002) 붉은 악마의 문화코드로 읽는 21세기
출판사: 중앙 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