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극우파의 등장 배경
Ⅱ. 이념적 토대
Ⅲ. 조직과 활동
Ⅳ. 결론: 평가
Ⅰ. 서론: 극우파의 등장 배경
1993년부터 클린터 행정부가 집권하면서, 클린턴을 중심으로 한 진보-좌파 세력이 집권하였다. 1992년 대선 결과에 의해,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장악하였다. 여성 의원의 진출이 뚜렷하여, 상원에 4명, 하원에 19명이 되었다. 하원에서는 흑인과 히스패닉계 의원의 수가 늘었다. 초선 의원들 가운데는 40대의 젊은 나이로 학위를 가진 의원들이 많았다. 그리고 군복무를 하지 않았거나, 주 정부 차원에서 정치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많았다. 다시 말에 그들은 ‘베이붐 세대’ 나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1960년대의 민권 운동, 신좌파 운동, 반전운동, 마르크스주의 운동, 여서해방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의회는 그 동안 변화된 미국 사회의 좌경화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이는 보수-우파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클린턴을 중심으로 한 이들 진보-좌파 엘리트 집단들이 시행하는 정책들, 더 나아가는 연방정부에 대한, 보수-우파의 불만이 생기게 되었다. 1993년초 클린턴에 백악관에 들어갔을 대, 미국의 경제는 어려운 생태에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클린턴 행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정부가 투자하는 공공사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른 재원은 세금 인상으로 조달하려 하였다. 그 때문에, 경제 계획안에서는 중산층에 대한 세금인상, 고소득자에 대한 10퍼센트의 부가세 부과, 에너지 세의 부과, 기업세 인상 등이 포함되었다. 당연히 중산층 이상의 유산계급들은 맹렬히 반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의료보험 혜택을 국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주려고 했던 정책은 비록 실패로 끝나게 되었지만, 공화당을 비롯한 반대 세력에게 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복지 국가화 말고도, 미국이 비전통적이고 비기독교적인 대항문화와, 다문화 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보수-우파들의 반발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클린턴 정부에서는 복지 정책 뿐 아니라, 낙태허용, 동성애 인정, 여성 해방 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보수-우파 세력에게는 미국적 이상과 미국적 가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러한 흐름을 막고 원래의 기독교 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극우파 자신들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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