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애
3. 시의 테마
라는 Allen Tate의 견해는 Emily Dickinson 이라는 한 신비한, 영원한 처녀 시인에게 있어 그 어떤 얘기보다 정당성을 지닌다.
그녀는 이 세상을 끝마칠 때까지 처녀였다. 현실적으로 결혼을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당대의 사회, 또는 문학이라고 이름지어지는 모든 행위 - 가령 자신의 시를 발표한다거나, 저술을 한다던가, 명성을 기다린다던가 하는, 일체의 관습 (나는 이런 것을 감히 관습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한다) 에 타협할 것도 거부했다.
그리고 이런 거부는 물론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천성적, 또는 천부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생전에 겨우 7편 가량의 시를 으로랄까, 지면에 발표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발표를 포기하고 자기의 울타리 안으로 숨어 버렸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그녀의 시는 받아들여지기 곤란한 것이었고, 그 다음 그녀의 독특한 스타일 - 즉 dash의 사용과 대문자의 사용, 또 행과 연의 특이한 구분 따위 - 은 편집자의 기이한 눈총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홀로 시를 썼다. 문학적인 대화 같은 것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번 T.W.Higginson 에게 문학에 대한 충고를 요청하는 편지를 띄운 일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당시의 사회는 비평 의식이 그렇게 활발하지 못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녀의 시는 완전히 가려진 채 시인의 고독 속에서 은밀히 창조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1700 여편의 원고 뭉텅이와 한 순수한 생애를 서랍 속에 감추고 일생동안 거의 한 번도 떠나지 않은 고향집에서 소리 없이 세상을 하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부활했다. 이번에는 완전하고 위대한 한 시인으로서.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1955년이후, 그러니까 시인의 사후 69년이 되는 해의 일이었다. 그해에 비로소 그녀의 본격적인 시집이 3권으로 Havard에서 출판되었고, 그때부터 Emily Dickinson은 한 위대한 미국의 여류시인으로서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흔히 시인의 최초, 최대의 허영 (정확한 묘사인지는 모르지만)은 발표 또는 어떤 식이든 간에 독자에의 전달에 있다고 말해진다. 그래서 시인들은 현실적으로 돈이 되지 않더라도 대개 한 두 권쯤 생전에 시집을 만들어 보거나 발표를 꿈꾸거나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밀리 디킨슨은 결코 스스로 시집을 만들지 않았다. 그녀의 근원적인 절망과 고독은 그런 최초의 허영마저도 극복해버리게 했고 그 때문에 문학 사상 에밀리 디킨슨처럼 사후의 시집 간행으로 시 자체에 수난을 당한 시인은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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