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문명의 정의
Ⅲ. 잉카문명의 개관
Ⅳ. 잉카문명의 특징
Ⅴ. 잉카문명의 역사
Ⅵ. 잉카문명의 정치와 경제
Ⅶ. 잉카문명의 산업과 관습
Ⅷ. 잉카문명의 유적 - 마추픽추
참고문헌
잉카인들의 생활은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옥수수와 감자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라마`라는 동물을 키워서 거기에서 연료(라마의 배설물)와 털을 얻었다. 그들은 제국을 4개로 나누고 쿠스코를 중심으로 4개의 도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도로 중간마다 `차스키`라고 하는 파발꾼을 두어서 정보나 특산물을 쿠스코로 운송하였다. 가지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대신에 노끈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키푸아를 만들었다. 또 잉카인들은 글자가 없었다. 전설에 따르면 신들이 그들에게 글자를 한 그들은 돈이 없었다. 그들에게 부자란 자식이 많은 사람이었다. 잉카제국은 이 8왕시대 까진 쿠스코에 있던 소왕국이었다. 하지만 비라코차의 아들인 파차쿠티부터 제국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 시작은 창카족의 침입이었다. 창카족은 잉카의 수도로 침입하자 비라코차와 파차쿠티의 동생은 다른 도시로 피난을 가고, 파차쿠티는 쿠스코에 남아서 쿠스코를 지켜내었다. 그 사이에 비라코차가 죽자 파차쿠티는 자신의 동생과 전투를 하였고, 승리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비라코차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바로 창카족을 공격한다. 그리고 창카족을 어느 산 꼭대기에서 전멸시킨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자 파차쿠티는 거짓말을 한다. 이 전투의 승리를 위해서 신이 돌을 군인으로 변신시켜서 창카족을 전멸시켰다는 것이었다.
이 때 이후로 이 소문은 다른 부족으로 퍼지게 되었고, 다른 부족과 전투를 할 때면 잉카인들은 돌을 쌓은 제단을 들고 다녔다. 잉카인들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심리전을 계속 해 나갔다. 예를 들어 적의 뼈와 가죽으로 악기를 만든다든지 헛소문을 퍼트려 잉카인들이 세계제일의 군사라든지 등을 한 것이었다. 그 뒤를 이인 토팍은 아버지인 파차쿠티와 함께 잉카 10대 법을 만들었다.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로 우아이나를 정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후계자를 다른 아이로 바꾸었다.
게리 어튼(2003) : 잉카신화, 범우사
마이클 우드(2005) : 태양의 제국, 잉카의 마지막 운명, 렌덤하우스 중앙
전규태(1988) : 잉카문명의 신비, 백문사
카르망 베르낭(1996) : 잉카-태양신의 후예들, 시공사
프란시스코 카란사(1998) : 마법의도시 야이누, 문학과 지성사
Longhena, Maria(2004) : 잉카문명: 잉카, 안데스의 역사와 문화, 생각의 나무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