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1차 세계대전 종료 후 호황.
(2) 대공황의 발생과 원인.
(3) 대공황의 영향1 - 미국.
(4) 대공황의 영향2 - 세계.
(5) 뉴딜 정책
2. 제 2차 세계대전
3. 1945- 1960 전후(前後)경제
(1) 마셜 플랜의 실시 이유
4. 1970-80년대 미국경기침체
5. 1980년대 미국경제
6. 1990년대 미국경제
7. 최근의 미국경제
1929년 가을, 미국의 주식 시장이 무너졌다. 주식 1600만주가 거래되었고, 산업 지수는 거의 10%에 달하는 43포인트가 떨어져 그 전해의 상승분을 다 상쇄해버렸다. 많은 회사의 주식들이 휴지 조각이 되었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주식 가치는 9월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대공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대공황의 원인으로 수많은 요인 중 다섯 가지로 정리해보면, 첫째 1920년대 미국 경제에 다양성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경제적 번영은 건설업, 자동차 산업, 몇몇 기초 산업에 집중되었고, 이 산업들은 1920년대 후반 쇠퇴하기 시작했다. 다른 산업들이 이런 불황을 일부 흡수하긴 했으나, 다른 부분의 감소를 보충할 정도의 능력이 없었다.
둘째로 구매력이 잘 분배되지 않았고 그 결과 소비자 수요를 창출하기 어려웠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따라서 생산량이 폭증하였다. 수요보다 공급이 과도하게 많은 초과공급 상태가 발생했고, 이로써 공장에 재고는 쌓여만 갔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임금 상태는 여전히 열악하였고, 따라서 적은 임금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저하되었다.
세 번째로 경제의 신용구조였다. 농민들은 빚을 많이 지고 있었고, 경작물 가격은 너무 낮아 빚을 청산할 수 없었다. 소규모 은행들은 고객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곤란한 상황이었고, 거대 은행들 역시 그러했다. 미국의 최대 은행들은 주식시장에 무모하고 현명하지 못한 투자의 대부를 해주고 있었다. 일부 은행은 파산했고, 그 외 은행은 신용 대부를 더 긴축하거나 채무자들이 갚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대부금을 회수하여 사태를 악화시켰다.
네 번째 요인은 국제적 채무 구조였다. 미국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총 백억 달러의 차관을 우방국들에게 내주었는데, 그 중 영국과 프랑스가 8백만 달러를 차지했다. 1918년 말 영국의 채무는 8억 5천만 파운드(32억 달러)에 달했다. 영국이 러시아와 다른 국가들에 수억을 빌려주었는데 그들이 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그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연합국들이 빚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 배상금을 지불할 수 없었다. 영국은 미국 정부에게 채무 탕감을 부탁하였으나, 미국 정부는 영국의 채무 탕감을 거부하고, 대신에 유럽 정부들에게 대규모의 대부를 제공하여 그들이 진 빚을 갚게 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1922년 포드니-매컴버 관세로 외국 상품의 미국 시장 진출을 방해하였고, 그리하여 빚을 진 유럽 국가들은 이자지급에 필요한 외환을 벌어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하여 국제 신용 구조의 붕괴가 1931년 이후 유럽에 대공황이 파급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3) 대공황의 영향 - 미국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금융 시스템의 붕괴였다. 1930년에서 1933년까지 9000개가 넘는 미국 은행이 도산하거나 폐업하였다. 부분적으로는 은행 폐쇄의 결과, 국가의 총 통화 공급이 3분의 1이상 감소했다. 통화 공급이 감소하자 구매력이 감소하고 물가가 하락했다. 제조업자와 상인들은 가격을 낮추고, 생산을 감축하며, 노동자를 해고하였다.
연방준비은행은 이자율을 높여 달러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쌓으려던 잘못된 판단으로 통화 공급이 더 감소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국민 총생산은 1929년에 1,040억 달러가 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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