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배경
-청교도 혁명
3. 내용설명
대학을 졸업하고 1635년까지는 해머스미스에, 이후 1638년 까지는 런던 서쪽 교외의 호튼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그의 자유사상의 기초를 마련하고 방향을 설정했다. 그는 엄청난 양의 문학․역사․철학 공부를 하면서 교양을 쌓았으며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면서 그의 위대한 테마인 선악 갈등의 최초의 연극적 표현이며, 후기의 3대작의 시풍을 암시한 가면극 《코머스 Comus》(1634)와, 신의 섭리를 소원하면서 새로운 희망으로 사는 결의를 피력한 목가적 작품이며 불의의 해난사고로 죽은 친구를 추도한 시 《리시다스 Lycidas》(1637)를 발표하였다. 1638년 대륙으로 건너가, 파리에서는 그로티우스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갈릴레이와 알게 되었으나, 고국의 정치적 동란이 위급함을 듣자 그리스 여행계획을 취소하고 1639년 귀국하였다.
밀턴의 생애를 크게 3기로 나눌 때, 이때까지를 제1기, 정치적 위기에 휩쓸려 논쟁으로 지샌 그 후의 20년간이 제2기, 그 이후의 시적 원숙의 시기가 제3기가 된다. 귀국 후 처음에는 자신의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집필준비를 하기도 하였으나, 마침내 시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청교도혁명과 크롬웰의 공화제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이는 그가 르네상스기의 다른 시인들처럼 위대한 영웅시를 쓰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청교도의 주장에 대해서도 몹시 열광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저작의 80%를 차지하는 산문 작품(1641∼1660)은 3종류로 대별된다. 제1은 새로운 예루살렘의 도래를 믿고, 감독제도하에 있던 영국 국교회를 비판하여 성서중심주의를 전개한 여러 논문이다. 그리고 제2는 M.파우엘과의 불행한 결혼을 경험하고, 자연과 이성을 근거로 하여 성서의 권위에 도전한 4편의《이혼론》이다. 마지막으로 제3은 교육론과 검열 없는 출판의 자유를 주장한 《아레오파지티카 Areopagitica》(1644) 외에 찰스 1세의 처형을 지지하고 크롬웰의 라틴어 비서관이 되어 공화제를 옹호한 일련의 논쟁문서, 즉 《왕과 위정자의 재임》(1649)과 《우상파괴자 Eikonoklastes》(1649), 《영국 국민을 위해 변호하는 서(書)》(2편, 1651, 1654) 등이다.
이들 작품으로 인해 그의 이름은 전유럽에 알려졌다. 그러나 1652년에는 지나친 격무로 말미암아 겨우 43세의 나이에 시력(視力)을 잃고 말았다. 1660년이 되자 그의 노력도 보람없이 공화제가 좌절되고 왕정이 복고되었다. 따라서 그는 신변이 위험해지고 완전실명의 불행한 처지에 놓여져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 이후가 그의 생애 중의 제3기에 해당하며, 기적적으로 처형을 면하게 되어 만년의 3대작을 내놓게 된 것이다.
인간의 원죄(原罪)와 그 죄로 인한 낙원상실의 비극적 사건을 다룬 대서사시 《실낙원》
인터넷사이트
http://en.wikipedia.org/wiki/Paradise_lost
http://www.seelotus.com/gojeon/oe-kuk/poetry/sil-nak-w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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