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論
Ⅱ. 本論
1.일의 변천사
2.생계와 욕구충족 수단으로써의 일
3.보다 나은 자기실현과 창조로서의 일
4.일의 사회성
5.올바른 직업선택과 윤리의식
Ⅲ. 結論
그러나 노예가 노동의 전부를 담당하던 고대에 일은 인간의 삶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이란 가능하면 노예들에게 떠맡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이득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저주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땅과 노예 등 재산을 소유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삶의 기본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응용과학보다 순수과학을 더 선호했다. 그것은 그들이 육체적인 일보다는 정신적인 일, 더러운 일보다는 깨끗한 일을 선호했음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이다.
3) 중세 시대
단순한 노동에 불과했던 일이 긍정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제국의 몰락 이후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완전한 자급자족 체제를 유지했고, 일은 ‘눈에 보이는 기도’였다. 중세시대 장인조합의 등장으로 개인의 일과 관련된 정체성이 증가하게 되었고, 12세기에 이르러 그 사람의 직업과 동일한 성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베이커(빵 굽는 사람), 카펜터(목수), 대처(이엉장이), 스미스(대장장이), 위버(베 짜는 사람), 골드스미스(금 세공인), 쿡(요리사)과 같은 성이 직업으로부터 파생된 것들이다.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으로 인해 일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졌다. 일의 도덕적 · 영적 가치가 상승했다는 사실은 거지가 동정의 대상에서 게으른 식객으로, 천국의 문을 통과하는 첫 번째 사람에서 마지막 사람으로 전락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루터와 칼뱅의 노동윤리 중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을 구속해온 믿음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선하고, 일하지 않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는 우리가 일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구원을 찾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일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창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받는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종교 개혁가들은 모든 일을 소명으로 정의했다.
4) 근대 시대
18세기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은 프로테스탄트의 관점과 계몽주의의 이상을 조합해 새로운 노동윤리를 만들어냈다. 부가 사회에 이득이 되고 개인에게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며, 그는 종교적 의무가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일을 강조했다. 강한 도덕성이야말로 부에 이르는 열쇠라고 설교되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데일 카네기가 1937년에 쓴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나타나듯이 개인의 성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도덕성’이 아니라 ‘심리학’이 성공에 이르는 열쇠가 된 것이다.
20세기에 일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키는 세 가지 움직임이 발현하는데 과학적 관리법, 복지 자본주의, 경영에서의 인간관계 접근이 그것이다. 과학적 관리법으로 일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파편화되고 노동자들은 기계처럼 관리된다. 노동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 직원 복지의 개념이 도입되었으며, 직원의 심리를 관리해서 기업에 대한 충성심을 극대화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부터는 기업문화, 팀워크, 리엔지니어링 등의 개념이 회사에 도입된다. 일에는 의미와 재미까지 부여되고, 직원은 회사에 충성하는 조직인으로 재탄생한다. 그러나 직원들의 충성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1990년대의 구조조정 덕분이다.
5) 현대 시대
현대에 이르러서 일은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 가고 있다. 일을 통해 소득을 얻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직업을 가지는 것이 여러 가지 유용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 문화에서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은 규율, 정체성과 가치를 제공한다. 일은 우리의 시간을 조직하고 우리의 삶에 리듬을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우리에게 매일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준다는 점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매일 매일을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활동으로 채울 수 있을까? 우리들 대다수는 그것이 매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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