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원군의 내정 개혁
1) 인재등용
2)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3) 재정, 군사제도의 개혁
4) 민란 대책
3. 대원군 정치의 성격과 의의
대원군이 정권을 장악한 당시 조선왕조는 복잡한 국내외 정세 속에 있었다. 국내적으로 봉건왕조의 모순이 말기적 현상을 드러내어, 왕조 지배체제의 쇠퇴는 만회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봉건사회의 해체과정은 모든 사회 부문에서 진행되었다. 이를 가능케 한 동력인 농업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사회적 분업이 진전되었다. 그 결과 상품화폐경제가 발전하고 그 성격 또한 변화하게 된다. 종래의 시장에서 주로 유통되던 양반관료의 사치품 외에도, 농민들의 농업 생산에 필요한 농기구․면화․면포․미곡 등이 중요 상품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상품들은 농촌의 장시에서 교환되었고, 이를 토대로 상업적 농업을 영위하는 농민들이 출현하였다. 또한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따른 토지의 상품화로 토지에 대한 지배권이 강화되었고, 토지 소유의 집중현상은 지주와 전호 농민의 토지 소유관계를 둘러싼 대립을 격화시켰다.
봉건사회의 위기는 신분제 변동에 따른 봉건적 신분 질서의 동요, 지주제의 확대에 따른 지주와 전호 농민의 대립 심화, 농민층 분해의 진전으로 인해 초래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지주계급은 양반특권지주와 새롭게 성장한 서민지주로 분화되었고, 농민층도 부농․빈농․농촌노동자로 분화되었다. 이러한 분화는 농촌 사회내의 대립을 심화시켰을 뿐 아니라 봉건사회의 위기를 조성하는 조건이 되었다.
봉건사회의 위기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드러났다. 이 시기에 양반세력 일반의 광범한 참여가 결여된 세도정치가 행해졌으며, 이러한 권력의 집중현상이 서울의 소수 명문가문을 중심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정권의 지지기반은 더욱 축소되었고, 그 결과 지배계급 내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세도정치 시기에는 국가재정의 위기가 만성화되었다. 세도정권은 국가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재원 확보에 열중하였는데, 대동미(大同米)의 중앙 상납분을 늘리고, 환곡의 총액을 증가시키고, 주화의 질을 떨어뜨려 화폐 발행에서 생기는 이익을 늘리는 등의 조치가 행해졌다. 이로 인해 지방관청의 재정상태도 허약하게 되어, 각종 잡세의 부과나 환곡, 고리대 등을 통해 재정부족을 보충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19세기의 삼정 수탈의 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와 더불어 봉건적 지배 이데올로기도 그 영향력을 상실해 갔다. 실생활과 유리된 채 부단히 논쟁만을 되풀이하는 성리학 일변도의 사상적 상황은 봉건체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사상적 모색이 정권에서 소외된 지식층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양명학과 실학사상의 대두이다. 한편 이제까지 지배의 대상으로만 치부
국사편찬위원회,「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한국사 37-서세동점과 문호개방』, 국사편찬위원회, 2000
성대경, 「대원군정권의 정책」『대동문화연구 18』, 성균관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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