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의 정치적 배경
본론 1
- 비변사의 정의
- 비변사의 설립배경
- 비변사의 구성
본론 2
- 비변사의 기능과 변천사
- 참고 : 비변사등록
결론
- 비변사의 의의
- 나의 생각
참고문헌
조선시대의 정치적 배경
조선초기에는 군무와 정무의 구분과 문무의 관직 구분이 분명하였다. 따라서 무관은 정무에 관여하지 못하고서 조선시대의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에서 정무의 민정과 군정을 도맡아 다스려 그 실권을 대단했지만, 왕권과 의정부(議政府), 육조(六曹), 삼사(三司)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균형을 유지해 나갔었다.
한편, 조선의 군사행정은 국방부격인 병조(兵曹)(조선시대 군사관계 업무 총괄하던 중추적 기관)에서 관장하였지만, 조선 중기 성종 때 왜구와 여진의 잦은 침입이 발생할 시에는 병조뿐만 아니라 의정부와 육조의 대신, 지병사재상으로 구성한 회의에서 군사방략을 협의, 결정하여 해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적의 침입 이후 소집되어 즉각적 대처를 하지 못한다는 폐단으로 생겨난 비변사는 이조전랑 지대제와 함께 조선 중기 이후의 중앙의 권력 운용방식을 크게 변화시켜 놓았다.
본론 1
1. 비변사의 정의
비변사(備邊司)는 조선 중기 중종에서부터 조선 후기 고종 2년까지 존재했던 조선시대의 정규관청으로써, 비국(備局) 또는 주사(籌司)로 불린다. 군국기무를 관장한 조선 중기의 최고 문무합의 기구인 비변사는 원래 남쪽해안의 왜구와 북쪽 국경지대의 여진의 공격에 대한 방어책을 구하기 위해 임시로 마련되었지만, 독자적 합의기관이 되고, 상설기구화되면서 점차 기능이 강화됨에 따라 의정부와 왕권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 비변사의 설립배경
사화와 붕당정치로 약해진 국방력으로 인해 남쪽왜구와 북쪽 여진의 침입이 잦았고, 그로 인해 조선 성종 때부터 행해진 군사체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적의 침입보고를 받은 연후에 소집, 집결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조선은 적의 침입에 대한 즉각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고서, 속수무책으로 왜구와 여진의 공격에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러한 큰 문제점으로 인하여, 중종 12년 1517년 6월에 설치된 것이 바로 "비변사(備邊司)"이다.
비변사가 설치되기 이전에는 주요관직원들이 회의장소에 모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길었고, 협의와 결정의 진행과정또한 길어졌었다. 하지만 비변사가 설치된 이후부터는 비록 초반에는 임시기관으로써 뚜렷한 자리매김을 하
조선 정치 제도사 - 장국종 지음(한국문화사)
한국의 왕 - 역사, 한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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