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보르헤스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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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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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보르헤스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유희로서의 수수께끼
2. 유희로서의 포스트모던
3. 유희로서의 허구
4. 작품 속에서의 유희
본문내용
1. 유희로서의 수수께끼

어릴 적 나의 큰 기쁨은 누군가가 내는 수수께끼의 답을 모색하고 마침내 그 답을 맞혔을 때 얻는 희열 같은 것이었다. 무수한 사고들이 각양각색의 방향으로 내 머리 속에서 발길질해올 때, 그리고 그 결과로 애초에 숨겨져 있던 답을 스스로 도출해내었을 때, 나는 무엇이 그리도 좋았는지 모르겠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맞이하여 생사를 건 수수께끼를 풀어 낸 오이디푸스의 비장함 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나는 그저 누군가가 나에게 문제를 내고 마침내 내가 얻은 답이 그의 머리 속에 있는 답과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과정에 매료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즐거운 수수께끼에 답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저 문제만이 있고, 그것에 대한 답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던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어린애 같은 본성이다. 예컨대, “진리란 무엇인가?”와 같은 수수께끼에는 마땅히 대답할 길도 없고, 또한 내가 대답한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아무도 확신하고 ‘틀렸다’는 선고를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남는 것은 허무일 것이다. 가혹한 철학자, 니체의 파격적인 선언대로 이미 신이 죽고 없다면, 그 신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어떤 권위 있는 로고스여야 한다. 하지만 신(神)만한, 그 가공할만한 무게만큼의 기의(signifie)를 가진 것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신의 빈 자리를 아무도 대체할 수 없다면 그것은 영영 공석(空席)으로 남아야 하고 아무도 수수께끼의 답을 풀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해답이 없다고 해서, 이대로 수수께끼 놀이를 그만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도 유쾌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설령 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리 언표 배후에 뱀처럼 도사리고 있는 기의를 내가 찾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도 그 기의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그 무궁한 수수께끼에 도전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답을 얻어내는 쾌감뿐만이 아니라, 그 수수께끼 자체에 도전하고, 끊임없는 사고의 추동을 받는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의 매혹인 것이니까.「알모따심에로의 접근」에서 바하두르가 끝내 알모따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은둔자를 만나지 못하듯이,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만이 지니는 의미인 것이다.
보르헤스의 소설답지 않은 소설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점은 그가 펼쳐놓는 어떤 환상적인 세계에서 일상에 젖은 내가 풀지 못했던 여러 갈래의 수수께끼들이 그야말로 ‘끝없이 두 갈래로’, 아니 ‘n 갈래로’ 갈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 그의 환상적인 세계로 접어들고 나면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