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은 여러 평자들에 의하여 이미 신앙을 바탕으로 시를 쓴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선친은 충북 옥천에서 산 士族의 후예로서 일시적으로 중국, 만주에 다녀온 후 한의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카톨릭에 입교하여 아들 정지용에게 영향을 주어 착실한 신자가 되게 했다. 또한 정지용은 차남 구익, 삼남 구인에게 신부수업을 시켜 멀리 함경도 德源神學校에까지 보냈다고 한다. 鴻漫映二「정지용의 생애와 문학」, 『현대문학』, 1982,7월호, p. 383.
이렇듯 정지용의 생애와 작품은 카톨릭과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 카톨릭은 지용정신의 근원이며 그의 시세계를 지배하는 근본원리인 것이다.
1930년은 그의 신분상에 큰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문인으로는 이 되었고, 개인으로는 사회인이 되었다. 이해 9월부터 모교인 휘문학교 교사로 취임했다. 신분의 변화가 있었던 이 해를 기점으로 대략 1933년 6월의 시작으로부터 그의 시세계도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모는 시의 경향과 주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시적 안목이 타향․객지체험의 차원에서 민족적․종교적 체험의 문제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즉 주제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으며 보편화되었다.
이 무렵 한국 천주교는 자체의 체질 개선과 교세 확장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할 때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카톨릭 문학은 계급주의 문학의 이념성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러한 문단적 상황과 함께 정지용은 초기시 작품들이 사물의 객관적 묘사에 충실한 반면 사상성의 빈곤을 초래했다는 반성이 내부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에 대한 고민은 초기 사물시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방향의 모색으로 이어져 서구의 현대 정신의 실체, 고전주의적 인간관의 정수를 자신의 상황에 맞도록 수용하여 종교시에 담아내려 했다.
김효중, 『한국 현대시의 비교문학적 연구』, 푸른사상사, 2000.
장도준, 『정지용 시 연구』, 태학사, 1994.
김신정, 『정지용의 문학세계연구』, 도서출판 깊은샘, 2001.
김종태, 『정지용시의 공간과 죽음』, 도서출판 월인, 2002.
2. 논문
권국명, 「정지용시의 카톨릭시즘 受容樣相」, 대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1988. 12.
조영일, 「정지용시의 카톨리시즘」, 관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0.
윤은조, 「정지용의 시세계 연구」,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9.
육순복, 「정지용 시연구」, 한성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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