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가면희의 제의극적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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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중․일 가면희의 제의극적 양상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 가면희의 제의극적 양상

Ⅳ. 일본 가면희의 제의극적 양상

Ⅴ. 한․중․일 가면희의 비교 -결론을 대신하여-

본문내용
한국․중국․일본의 가면희를 비교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관점이 가능하다. 첫째는 영향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으로서 주로 문헌자료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둘째는 영향관계와는 무관하게 동이점을 비교하여 공통점을 통해서는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차이점을 통해서는 민족문화적 특징을 이해하려는 방법으로 주로 현지조사 자료가 활용되었다.
여기서는 후자의 입장을 취한 기왕의 연구가 한국과 중국에 국한된 것을 지양하고 일본까지 포함시켜 명실상부하게 동아시아의 비교연극론을 시도한다. 비교연구 방법을 취할 때 관점과 기준의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하므로 한․중․일의 연극을 비교함에 있어서 대상을 제의적인 가면희로 제한하고, 가면희가 무의(巫儀)에서 기원하여 사제자 내지 연희자가 무격에서 민간인으로 교체되고 세속화․오락화되는 양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국내에서는 1960년대에 가면극의 제의기원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고, 일본도 1969년에 가구라(神樂)에 관한 연구물이 나왔으며, 중국은 1985년 무렵부터 나희(儺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중․일의 제의적 가면희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동아시아연극의 샤머니즘적 문화기반이 밝혀질 것이며, 삼국의 연극사의 특징이 부각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고전연극사 내지 고전희곡사의 기술에 이어 동아시아 삼국의 연극사를 비교하는 작업의 단초로도 삼을 수 있으며, 또 연극학자 상호간의 학술교류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Ⅱ. 한국 가면희의 제의극적 양상

1. 동해안 이가리별신굿

‘도씨(都氏) 터전에 김씨 골매기할매’와 지신(地神)을 모신 삼령각(三靈閣)에서 음력 9월 9일 자정에 제관 3명(1명은 도가를 겸함)이 제물을 진설하고, 분향과 강신→재배→헌작과 축원→재배→소지(燒紙)→음복의 순서로 제사를 지낸다. 아침이 되면, 바닷가에 굿당을 만들고, 일월맞이대․용왕대․골매기대를 세운다. 제단의 상당(上堂)에는 일월맞이․세존․군웅을, 중당에는 토지신․산신령․조상을 위한 제상을 놓는다.
제차(祭次)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참고문헌
박진태, 『탈놀이의 기원과 구조』, 새문사, 1990.
박진태, 『동아시아샤머니즘연극과 탈』, 박이정, 1999.
박원모, 일본 시로미신사의 가구라, (박진태 편저, 『동양고전극의 재발견』, 박이정, 2000).
이두현, 『한국의 가면극』, 일지사, 1979.
이두현, 동해안 별신굿, 《한국문화인류학》제13집, 1981;『한국민속학논고』 학연사, 1984.
임동권, 『한국민속학논고』, 집문당, 1982,
황루시, 일본 후루에다오의 시모쯔키카구라와 쿠로모리신사의 카구라(박진태 편저, 『동양고전극의 재발견』, 박이정,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