鄧小平의 이러한 입장은 천안문 사태이후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 등으로 원만하지 못했던 시기를 지나, 1992년 초 남순강화를 거쳐 1992년 말 장관급 수준의 대화를 재개함으로써 다소 긴장이 완화되면서 보다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어서 클린턴 행정부는 93년에 인권과 무역문제를 연계시켜 중국에 제재를 가하려는 입장을 견지하였고 중국이 파키스탄에 미사일을 보내고 있다고 비난하고 대중국 경제 제재조치를 취하였다. 1994년 미국 정부는 대만과의 관계증진을 선언하고 고위급 방문을 추진했으나 동시에 중국의 인권문제와 최혜국대우 문제의 연계를 해소함으로써 다시 양국이 접근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5년 대만의 이등휘 총통의 방미 사건이라는 대만과 관련된 사건으로 다시금 긴장관계로 전환되게 된다. 이등휘 총통의 방미 허용은 중국입장에 본다면, 미국과의 국교수교 당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 미국이 중국의 통일정책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강한 불만 표시와 미국의 일면 유화적인 태도(최혜국대우의 유지) 등으로 중-미관계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지만 긴장의 소지는 여전히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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