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역사] 한국과 일본의 불교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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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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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Ⅱ.조선시대 불교건축
Ⅲ.무로마치․ 에도 막부시대의 불교건축
Ⅳ.결론
본문내용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통점 중 하나가 불교문화권이라는 것이다. 양국 모두 몇 백년 전에 불교가 전래되어 꾸준히 신봉되고 있다. 그리고 불교가 양국의 많은 부문, 즉 정치․ 경제․ 문화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양국은 각자 독특한 불교문화를 발전시켰다. 여기서는 한국의 조선시대와 일본의 무로마치․ 에도막부의 불교건축을 비교하고자 한다.

■ 조선시대의 불교건축물
한국은 삼국시대 이후 불교건축이 시작되었다. 그 후 계속되어온 불교건축은 조선시대에 오면서 억불정책으로 인해 위축되었다. 조선시대 들어오면서 불교는 정책적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태종은 전국 242개 사찰 이외의 절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는 조처를 취하였고 종파를 기존 11종에서 7종으로 줄였다. 뒤를 이은 세종은 종단을 선종과 교종 양종으로 줄이고 승려의 도성 출입을 제한하였으며 전국 사찰 중 36개 소만을 나라에서 인정하도록 하였다. 성종 대에 가서는 사대부 부녀자의 출가가 금지되고 승려에게 나라에서 신분을 인정하는 도첩제를 실시해서 승려 증가를 막는 조처를 취했다. 이처럼 불교는 정치적인 억압의 대상이 되었고 실제로 불교세력을 억제하는 구체적인 조처가 취해졌다. 그러나 일반 백성의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나 특히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의 호불 경향은 바뀌지 않았다. 왕들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성은 물론 지방의 유명 사찰에 대한 지원과 건물 신축에 적극적이었다. 세종은 해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