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사회] 독일의 생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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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사회] 독일의 생태운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생태운동이란?
2.독일 생태운동의 진행과정
3.독일 생태운동의 성과


본문내용
73년 석유파동으로 인해 70년대 중반 반핵운동 일어남
: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핵’을 대안 에너지로 여기고 정부주도로 개발함.
55년 원자력 부 신설, 65년 말까지 핵 에너지 개발 관련 집권 CDU에 어떠한
반대 의견도 없었음. 72년부터 방사능 폐기물 처리 시설물 가동.
73년 석유파동 이 후 ‘핵 관련법’제정, 이 후 국가의 비호를 받게 됨.
이러한 핵 개발은 6.8세대들에게 비판을 받게 됨.
: 원자력(핵 에너지 개발베트남전, 군국주의), 정부와 타협한 핵에너지
기업가  중앙집권화된 자본주의 집단, 권위주의), 국익우선주의


포도농장 농민들이 핵심세력, 시민들의 자율적 저항 운동.
핵 발전소 건설을 밝힌 주지사, Filbinger가 핵 발전소 건설
담당회사의 자문위원장, 거대주주로 드러남.
건설계획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농민
자연보호가, 교사와 학자가 주축이 되어 자율적인 운동
전개  독일 최초의 대규모 시민 운동
약 8개월간 지속. 95년부터 핵발전소 건립지대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됨.


"독일 북부의 고어레벤(Gorleben)에서 있었던 반핵운동을 소개하겠다. 당시 1979년에 최초로 대규모 집회가 있었는데 10만 여명이 참여했다.쟁점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고어레벤에 만들려고 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10만 명의 인파가 하노버까지 대규모 행진을 벌였다. 농민들은 걷거나 트랙터를 끌고 오기도 했다.이 대규모 행진이 결국 정부에 커다란 영향을 줘서 재처리 시설이 들어오지 못했고 이후에는 정부가 반핵 운동진영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이제 독일 정부는 3년 전부터 핵발전 정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고 지난 주 최초로 약 30년 정도 가동됐던 핵발전소가 없어졌다."


지역주민과 시민,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이 우수하다는 논리 속에 80년대에도 핵 발전소 계속 건립하게 됨. 하지만 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 후 집권 SDP는 반핵요구를 전격 수용하게 됨.

영구적 핵 사용 포기 정책을 2005년 결정하고 2021년까지 모든 핵 발전소를 정지시킬 계획


핵 발전소의 기술적 안정성에 대한 의심, 인간에 대한 유해성 ‘반기술적’
중앙에 의한 발전 ‘지역보호주의적’ , ‘반권위주의적’, ‘반자본주의적’
70년대 후반부터는 ‘평화주의적’ 의미까지 덧붙여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