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명] 트라야누스 기념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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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문명] 트라야누스 기념주 소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트라야누스 황제에 대해
2.1. 트라야누스가 황제가 되기까지
2.2. 트라야누스의 군사원정
2.3. 트라야누스 황제의 치세에 대한 두 가지 평가
3. 트라야누스 황제와 관련된 문화유산의 소개
3.1. 트라야누스 황제의 다키아 원정 기념주(106~113)
3.2. 트라야누스 포룸
3.3. 아담크리시의 트라야누스 전승기념비
3.4. 이집트 아스완의 트라야누스 키오스크
4. 나오며
본문내용
2. 트라야누스 황제에 대해
2.1. 트라야누스가 황제가 되기까지

5현제 중 첫 번째 황제는 네르바이다. 그는 96년 9월부터 98년 1월까지 짧은 기간 동안 황제의 자리에 있던 인물로 71년과 90년에는 콘술(집정관)을 지냈으며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암살당한 뒤에 황제가 되었다. 네르바 정권의 기본방침은 폭군 도미티아누스가 전제 정치를 위해 행사했던 방식을 거부하고 황제와 원로원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트라야누스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부터 총애를 받아, 도미티아누스의 치세 당시에 콘술
중 한 명으로 복무하였고 네르바
황제 때에는 상(上)게르마니아 총독을 맡고 있었다. 97년 네르바는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를 양자이자 공동 통치자로 삼았는데, 트라야누스는 네르바가 죽은 뒤 황제가 되었다. 트라야누스는 군사령관들과 원로원 양측에서 모두 환영할 만한 인물이었던 듯 하다.

트라야누스는 속주 출신 황제로 유명한데, 그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는 없으나 스페인 남부에 있는 로마 속주 바이티카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가 콘술 및 아시아와 시리아의 총독을 지내는 등 로마 제국의 공직에서 활발히 활동했음이 알려져 있다. 트라야누스는 아버지와 함께 로마 또는 여러 곳의 군사령부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이며 스페인의 군당 사령관을 맡는 등 군단 지휘참모로 10년간 복무했다고 한다.

2.2. 트라야누스의 군사원정
트라야누스 황제는 황제의 권한을 위임 받기 전 라인 강과 도나우 강 변경에서 1년을 보냈으나 별다른 정복 위업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101년에 그는 다키아 침공을 재개했다. 다키아는 그곳의 용맹한 왕 데케발루스 때문에 도미티아누스가 할 수 없이 포기한 곳이었다. 2차례의 원정(101~102, 105~106)을 통해 트라야누스는 다키아의 수도를 점령했고 데케발루스는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자살했다. 트라야누스는 도나우 강 북쪽의 카르파티아 산맥에 새로 다키아 속주를 창설했다. 이 속주가 생겨나면서 로마 정착민들을 위한 토지가 마련되고 풍부한 금광과 소금광을 채굴할 길이 열렸으며 러시아 남부 초원지대에서 이동해오는 유목민들을 흡수할 방어지대가 구축되었다. 이 다키아 원정이 조금 뒤에 소개할 트라야누스 기념주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트라야누스의 2번째 대규모 군사원정은 동방에 있는 로마의 오랜 적대세력인 파르티아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 이 시기는 분명하지 않은 듯 하다. 105년경에 원정준비를 위해 그의 휘하 장군 한 사람이 아라비아의 나바테아 왕국을 합병했다. 뒤이어 110년경에 파르티아인들은 로마에 우호적인 아르메니아의 왕을 폐위시켰으며 그 직후인 113년경에 트라야누스는 그를 복위시키기 위한 원정을 벌였다. 이듬해에 그는 상(上)메소포타미아를 합병하고 같은 해 또는 그 다음해에 파르티아의 수도를 점령하기 위해 티그리스 강을 따라 내려갔다. 그는 페르시아 만에 당도한 뒤 자신이 너무 늙어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정벌 위업을 재연할 수 없는 것을 한탄하여 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