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림폭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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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작림폭사사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혼란의 중국 10년 史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사건을 조망하기에 앞서 그 근저가 되는 중국의 지난 10년 간의 역사와 그 의미에 대해서 되돌아보겠다.

원세개의 죽음과 북경의 혼란
1916년 6월 황제를 꿈꿨으나 물러나야 했던 원세개(遠世凱)가 눈을 감았다. 그의 권력기반은 북양군(北洋軍)에 있었다. 이미 그가 황제자리를 탐내던 때부터 각지에서는 독립적인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었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제는 북양군마저도 분열하여 중국은 걷잡을 수 없는 내란으로 빠져들어 간다.
원세개 이후 북양군은 부총통 풍국장(馮國璋), 국무총리 단기서(段祺瑞)의 두 파로 크게 갈라진다. 이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일단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원세개의 뒤를 이어 대총통 자리를 받은 이는 부총통으로 있던 여원홍(黎元洪)인데, 비북양계인 그와 대결을 위해서였다.
단기서와 여원홍은 세계대전 참전 여부를 놓고 대립하는데,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자 단기서는 자파의 각 독군(督軍)을 북경(北京)에 모아 독군단(督軍團)이라는 것을 만들어 여원홍을 압박한다. 이때 안휘독군(安徽督軍)이던 장훈(張勳)이 등장한다. 여원홍은 단기서를 제어할 목적으로 장훈을 북경으로 불러들이지만, 사실 그는 변발도 자르지 않는 청조의 유신이었다.
북경에 들어온 장훈은 강유위(康有爲)와 짜고 복벽 운동을 일으켜 부의(溥義)를 황제로 추대하고 청조의 부활을 외친다. 하지만 단 12일 만에 단기서에 의해 복벽운동은 제압당하고, 이 사건으로 여원홍은 정권에서 사임하게 된다. 그리고 북양계의 단기서·풍국장이 북경정권을 장악하는데 이때부터 군벌간의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17년 8월의 일이다.
참고문헌
김희영. 『중국사』. 청아출판사. 1991
전락성. 『중국통사』. 지영사. 1998
존 K 페어뱅크 외.『동양문화사』. 을유문화사. 1995
진순신. 『중국의 역사』. 한길사. 1995
볼프람 에베하르트 『중국의 역사』. 문예출판사. 1997
동아일보 1928년 5월∼6월
중외일보 1928년 6월